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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겨울 제네바에서

정영현 정치부 차장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 후보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스위스 제네바. 도시의 관문인 코르나뱅역 앞의 풍경은 겨울의 스산함 자체다.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가득하고 살갗을 치고 가는 바람결은 차갑다. 레만호수 한가운데 자리한 도시의 명물인 제토분수는 아직 가동되고 있지만 싸늘한 날씨 탓에 구경 나온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추운 겨울, 텅 빈 도시 같지만 제네바는 조용히 바쁘다. 각국 대표들이 모여 무역에서 인권까지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회의를 담담하게 이어간다.

정확히 반년 전,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싱가포르를 찾아 창이국제공항 밖으로 나서던 순간과는 너무나 다른 날씨, 분위기다. 당시 싱가포르는 떠들썩했고 몹시 북적거렸다. 더운 날씨만큼 찾는 이들의 마음도 뜨거웠다. 북미 정상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빅 이벤트였다. 그들이 손을 맞잡고 나면 한반도에서 불안함과 불확실성의 변주가 끝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막연한 기대는 냉정한 현실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 현재 우리 곁의 불안함과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그간 이뤄진 남북교류의 성과만 해도 대단하다는 입장이기는 하다. 남북이 전방 감시초소(GP)를 함께 철거하고 남측 기차가 두만강을 향해 북녘땅을 달리는 현실 자체가 상전벽해라는 식이다.

정부의 설명이 맞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뜨거운 마음으로 끊임없이 북한을 설득했고 미국에 이해를 구했다. 그리하여 분단 이래 처음으로 북한 주민들 앞에서 연설도 했고 백두산에도 올랐다. 그래서 그다음은 뭔가.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던 북한 지도자의 답방은 좀처럼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아무리 북한 정권의 특수성이 있다지만 우리는 왜 아직도 북한이 답을 주기만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나. 일방적 기다림, 예전의 남북관계 그대로다.



무엇보다 변함없는 것은 새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열쇠인 북미 협상의 진행 양상이다. 보이지 않는 물밑 흐름이 굉장한 속도라면 반가운 일이겠지만 최소한 외부에 드러난 선에서는 순차적 흐름이 잡히지 않는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으로 향하다가 발걸음을 돌리는가 하면 북미가 상호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돌연 취소하고는 다시 만날 약속을 잡지 않기를 여러 달째다.

싱가포르에서의 뜨거웠던 추억은 이제 잊어야 한다. 한반도 분단 문제는 애초부터 ‘우리 민족끼리’가 아닌 ‘냉정한 외교’의 영역이었다. 외교는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갑게 식힌 머리로 하는 것이다. 제네바의 겨울 날씨처럼 말이다.

현재 국제 정세의 흐름을 가늠해볼 때 북한 지도자의 답방은 연내가 아니더라도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더 이상 이벤트 자체를 성과라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북미도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이다. 다만 그곳이 제네바가 될지 스톡홀름이나 오슬로 아니면 울란바토르가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싱가포르 때처럼 마냥 웃고 손잡고 박수 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우리도 미리 냉정하게 계산해야 한다.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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