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기에 미국은 어느 때보다 뒤숭숭하다. 발화점은 ‘트럼프 탠트럼(Trump Tantrum)’이다. 거칠게 ‘트럼프 발작’ 정도로 해석되는 이 용어는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상을 뒤엎고 승리하면서 일어난 미 국채 금리 급등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설명하는 데 잠시 쓰였다 사라졌는데 2년 만에 한층 폭발력이 커져 돌아왔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22일부터 시작된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의 원인을 콕 찍어 지적하면서 돌아온 트럼프 탠트럼은 미국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외교 분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튀어나와 미국은 물론 세계를 흔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여야가 합의한 긴급 예산안을 돌연 거부하며 셧다운 사태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전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사실상 예고됐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을 못마땅해하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해임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월가를 경악하게 했다. 그는 또 같은 날 시리아 철군을 전격 결정하면서 이에 반대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경질한다고 발표했다.
셧다운 하나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서 경제·외교의 근간을 흔드는 돌발 악재가 연타로 터져 나오자 미국 증시는 21일에 이어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에도 역사상 최악의 낙폭을 기록하며 추락했다. 시장은 트럼프 탠트럼이 미국의 패권을 지탱하는 양대 축인 달러화와 미군마저 가볍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하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뉴욕증시 상장 기업들 중 블루칩만으로 구성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이틀 동안 한국 정부 예산의 2배가 넘는 1조달러(한화 약 1,125조원) 이상 증발했다.
백악관 참모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해 일단 시장을 추슬렀지만 트럼프 탠트럼은 2019년에 더 자주, 더 세게 출몰할 것으로 우려된다. 외교·국방의 문외한인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2년간 폭주를 거듭했지만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공습을 결사반대한 매티스 장관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서류를 훔치듯 치워버린 게리 콘 전 백악관 경제위원장과 같은 ‘어른들의 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티스 장관이 연말 펜타곤을 떠나면 트럼프의 발작을 관리할 안전판은 완전히 사라지고 어떤 명령이든 이행 버튼을 누를 ‘충성파’만 남게 된다.
현명하고 노련하면서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용기 있는 인재들은 떠났는데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워싱턴의 권력 지도는 한결 험악해졌다. 내년 1월3일부터 하원은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고 미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은 반(反)트럼프의 선봉장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이 맡는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과 관련한 특검 수사를 비롯해 트럼프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에 대해 17건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이 하원 주요 위원회에서 추가 청문회와 조사에 본격 나서면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 폭풍 트윗을 날리며 분기탱천할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정치의 여러 난관을 돌파할 국면 전환용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동맹국에도 숱한 지뢰밭을 깔아둔 상태다. 당장 미국은 내년 2월 말까지 중국과의 무역전쟁 확전 여부를 결정할 무역협상을 눈앞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유럽연합(EU)·일본과도 무역협상을 앞두고 있다. 이들 협상에서 예측을 불허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이 어떻게 표출될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그가 ‘미국 우선’만을 앞세우며 변덕을 부릴 것은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주요 무역협상뿐 아니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트럼프 탠트럼의 제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트럼프를 믿고 섣불리 개입했던 캐나다는 중국에 집중타를 맞고 허망해하고 있다. 트럼프의 말만 믿고 시리아 내전에 참여했던 쿠르드족은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 될 새해에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탠트럼’에 빈틈없이 대처해주기를 바란다.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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