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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일상'이었고 복지는 '이상'이었나

[중랑구 모녀 극단 선택…여전히 뻥 뚫린 사회안전망]

노모는 '치매' 딸은 '대인기피증'

15년 거주했지만 주변 왕래 안해

통장도 몰라…지역 공동체 외면

노인연금 25만원으로 생활했지만

공과금 연체 안돼…기초수급자 제외

현실 맞게 사회보장시스템 정비해야





“통장도 모르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다들 뉴스에 나온 것을 보고 알았다는데 집값 떨어질까 봐 쉬쉬하는 분위기라 얘기하는 사람도 없어요. 죽은 사람만 불쌍하죠. 15년이나 살았다는데 그 집에 가보거나 (숨진 모녀) 연락처 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네요.”

복지 사각지대의 경종을 울린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이 5년 만에 재연됐다. 지난 3일 서울 중랑구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방에서 80대 노모와 50대 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이날 이사를 나가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발견됐다. 외부침입의 흔적이 없어 딸이 어머니를 먼저 죽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발견 당시 시신 한 구에서 이미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며 “시간이 꽤 지난 뒤에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건이 뒤늦게 알려진 23일 모녀가 살던 동네를 찾았지만 이들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들 모녀는 2004년 처음 동네로 이사를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집에서만 15년을 넘게 살았지만 주변과 왕래가 거의 없어 집 주인을 제외하고 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딸은 대인기피증으로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노모는 치매 증상을 앓으면서 사실상 둘이 한 집에서 같이 거주만 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모녀는 정부에서 지원되는 노인 기초연금 25만원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별도의 수입이 없다 보니 외부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인근 슈퍼마켓이나 세탁소·부동산에서도 이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인근에 사는 주민 A씨는 “월세방 사는 사람들은 낮에는 일 나가고 밤에 와서 잠만 자 이웃과 왕래가 없다”며 “모녀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모녀가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숨진 원인 가운데 하나도 이웃과의 단절이었다. 주변에서 아무도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지 못했고 빈곤층을 지원하는 각종 사회보장시스템에도 걸러지지 않았다.

서울시가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숨은 위기가정을 발굴하는 제도인 ‘찾아가는 동사무소(찾동)’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모녀는 철저히 배제됐다. 한마디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주민센터의 한 관계자는 “(숨진 모녀는)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됐고 가스비 등 공과금이 연체되지 않아 찾동 지원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은 안타까운 사례”라고 전했다. 모녀는 숨지기 수개월 전부터는 보증금으로 월세를 메우면서도 기초연금으로 꼬박꼬박 공과금을 납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되레 이 같은 공과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탓에 위기가정시스템에서도 걸러지지 못한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사람은 최근 줄고 있지만 ‘빈곤’ 때문에 삶을 버리는 이들은 오히려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국내 전체 자살자는 2013년 1만4,000여명에서 2017년에는 1만2,000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공동체나 국가지원 시스템 등에서 배제된 채 빈곤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은 같은 기간 2,900명에서 3,100명으로 되레 10%가량 늘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통장 등 주민대표를 활용해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을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가족과 같이 살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소득이 있는 65세 이상 노인 가구까지도 현장조사를 벌여 이번 사건 모녀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없도록 하기로 했다. 중랑구는 주민 41만여명 중 1차 지원 대상인 65세 이상 노인이 14%인 5만7,400여명으로 고령화 인구가 많은데다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대표적인 고령화 지역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가 붕괴 되면서 이웃 간 단절도 큰 원인”이라며 “공동체성의 붕괴로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만큼 복지지원 강화와 함께 공동체에 대한 시민들의 책임의식을 강화하는 방안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욱·김지영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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