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메이저대회는 마스터스, PGA 챔피언십, US 오픈, 디 오픈 이렇게 4개지만 ‘골프팬들의 메이저대회’는 따로 있다는 얘기가 있다. 바로 피닉스 오픈(총상금 710만달러)이다.
전 세계 골프대회 중 가장 자유롭고 떠들썩한 무대가 올해도 찾아왔다. ‘해방’의 날이 돌아온 것이다. 피닉스 오픈은 31일 밤(한국시간)부터 나흘간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TPC(파71)에서 펼쳐진다. 이 대회는 전통적인 골프 관전 에티켓을 요구하는 대신 고성 응원과 야유·음주를 허용해 ‘골프계 가장 큰 파티’로 불린다.
피닉스 오픈에서는 우승자의 스코어만큼 관심을 끄는 숫자가 따로 있다. 바로 갤러리 수. 과거 그랜드스탠드도, 열성 팬도, 맥주도, 유명 선수도 없던 보잘 것 없던 피닉스 오픈은 독특한 문화로 차별화에 성공한 뒤 매년 어마어마한 갤러리 수에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한 라운드에만 20만명 안팎이 모여든다. 지난해는 연습 라운드를 포함한 대회 주간에 총 71만9,179명이 대회장을 찾아 PGA 투어 흥행의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대회 기간 다양한 자선행사도 활발하게 진행해 지금까지 모은 자선기금만 1억3,400만달러(약 1,499억원)에 이른다. 대회 일정이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슈퍼볼 주간과 겹치지만 굳이 피하지 않는 것도 그만큼 흥행에 자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응원이나 야유의 데시벨이 가장 높은 곳은 별명이 ‘콜로세움’인 16번홀(파3)이다. 홀 전체를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나 봄 직한 최고 3층짜리 그랜드스탠드가 둘러싸고 있다. 2만명 이상이 들어차는데다 이 중 상당수는 맥주에 흠뻑 젖어 있다. 홀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심리적 요인 탓에 선수들은 부담을 느낀다. 물론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힘을 내는 강심장들도 있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PGA 투어 첫 풀시즌인 지난 1997년 이 홀에서 홀인원을 터뜨렸다.
피닉스 오픈의 상징인 그랜드스탠드는 매년 지었다가 부수기를 반복한다. 그대로 놓아두면 편하겠지만 주최 측은 최적의 관전 환경을 위해 그늘의 범위나 햇볕의 입사각 등을 계산한 뒤 매년 위치를 조정한다. 그랜드스탠드의 스카이박스(고급 관람석)는 275개이며 방 하나에 1,800달러(약 200만원)다. 올해 우승 후보로는 저스틴 토머스, 리키 파울러, 잰더 쇼플리, 디펜딩챔피언 게리 우들랜드(이상 미국), 존 람(스페인) 등이 꼽힌다. 대회장 인근 애리조나주립대 출신의 ‘홈타운 히어로’ 필 미컬슨(미국)도 강력한 우승 후보다. 한국 선수로는 김시우·안병훈·임성재·강성훈·배상문·김민휘·최경주가 출전한다.
PGA 투어가 애리조나의 사막 한가운데서 떠들썩한 파티를 벌이는 동안 유럽 투어는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을 별들로 수놓는다. 피닉스 오픈과 같은 기간 사우디아라비아의 로열그린스 골프장(파70)에서 열리는 사우디 인터내셔널(총상금 350만달러)이다. 총상금은 피닉스 오픈의 절반 수준이지만 출전선수 면면은 더 화려하다. 세계랭킹 1~3위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 브룩스 켑카(미국), 더스틴 존슨(미국)과 5위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15위 패트릭 리드(미국) 등이 사우디 최초의 프로골프 대회를 빛내기 위해 모였다. 이들에게는 거액의 초청료와 초호화 숙식이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에 따르면 우즈도 데뷔 후 해외 초청료로는 최고액인 36억원의 거액을 제안받았으나 일정상의 이유로 출전을 거절했다.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의 개막 축하공연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사우디 인터내셔널에는 최진호·왕정훈·박효원·김민규가 한국 선수를 대표해 참가한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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