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청장을 지내신 분의 이야기다. 중소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다 보면 꾸벅꾸벅 조는 분이 많은데 ‘가업승계’라는 말만 하면 눈이 갑자기 초롱초롱해진다고 한다. 그만큼 가업승계는 중소기업인에게 졸다가도 잠이 깰 만큼 절실한 현안이다.
중소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제조업을 둘러싼 환경이 어렵다 보니 자식들도 가업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관심이 있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 때문에 가업을 물려주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직계비속에게 승계 시 명목세율을 보면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50%로 일본(55%)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미국(40%), 독일(30%)과는 10%포인트 이상의 차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지분율이 50%를 초과하면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30% 할증평가돼 실효세율이 65%까지 올라간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다.
가혹한 상속세로 수십 년 일궈온 기업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사모펀드 업계의 사람들에 따르면 매물로 나오는 업체들이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이름이 밝혀지는 것은 다들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최근 누구나 아는 기업들도 상속세 때문에 매물로 나왔다고 보도됐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공식해명 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업승계 요건은 세금도 세금이지만 가업상속지원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한 사후요건이 엄격하다. 대표적인 것이 동일업종 유지기간과 고용유지 의무다. 우리나라는 상속 후 10년간 동일업종을 유지해야 한다. 직원 수도 10년간 상속을 받았을 때의 인원수를 유지해야 한다. 요즘같이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요건이다.
독일은 상속 후 5년간 가업을 유지하면 된다. 동일업종을 유지할 의무도 찾기 어렵다. 고용조건도 5년간 직원들의 급여총액을 승계 당시 총액의 400% 이상만 유지하면 가업상속 지원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상속 시 세금을 공제해주는 기업상속공제제도의 이용 건수가 한국은 지난 2017년 기준 75건에 불과한 반면 독일은 2만5,000건이 넘는다.
기업가들에게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기업이 대대로 이어져 커나가기를 바라는 본능이 있다. 그런데 호랑이도 울고 갈 정도의 엄격한 가업승계 요건이 이를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다 보니 승계를 위해 각종 편법과 탈법 사례가 일어나게 되고 이를 막으려고 제도는 엄격해져만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가업승계 시기도 놓치다 보니 여든의 부모가 예순의 자식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노노(老老)상속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며칠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가업승계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다. 중소기업인들은 가업상속제도에 대해 혁신적인 방안을 바라고 있다. 상속세를 완전히 폐지하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호주·캐나다 등 13개국에서 상속세를 도입하지 않거나 폐지하고, 최종적으로 지분 매각 시 양도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번만큼은 중소기업 현장의 환호를 이끌어낼 만한 파격적인 개선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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