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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검사가 뛴다] "강력범죄 트라우마 치유할 원스톱기구 필요"

<1> 박윤석 수원지검 부장검사

검찰·경찰·여성부로 분산된

피해자지원기관 하나로 묶어

효율적 보호시스템 만들어야

외면받던 피해자들 인권 주목

국내 최초로 '블랙벨트' 인증

검찰 이미지 바꾼 일등공신

4차 산업혁명이 경제·사회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불러오지만 이를 음지에서 악용하는 범죄 수법도 날로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다. 범죄에 맞서는 검사들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국민에게 양질의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시대다. 대검찰청이 지난 2013년부터 도입한 공인전문검사 제도는 이 같은 시대상을 반영한 검찰의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 받는다. 서울경제신문은 전문성이 ‘대가(大家)’ 수준에 이른 검사에게 수여되는 블랙벨트(1급 공인전문검사) 인증과 전문 사건 처리실적이 우수한 검사 주어지는 블루벨트(2급 공인전문검사) 인증 검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문검사의 현주소와 그간의 성과를 조명하려고 한다. 이들이 들여주는 생생한 현장 스토리를 총 10회에 걸쳐 게재한다.

박윤석 수원지검 부장검사./성형주기자




“강력 범죄를 겪은 이후 체면이나 인간관계 때문에 신음하거나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피해자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보호 시스템이 정말 시급합니다. 현재는 검찰과 경찰, 여성가족부 등으로 분산돼 있는데 피해자 지원 기관을 한 곳으로 일원화한 원스톱 기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통상 ‘검사(檢事)’의 역할이라고 하면 범죄자를 수사해 법의 심판에 넘기는 존재로 생각한다. 범죄 사실을 추궁하는 날카로운 이미지 속에 누군가를 다독이는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서울경제신문이 11일 서울 우면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난 박윤석(55·사법연수원 29기) 부장검사는 이 같은 편견을 깨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피해자 보호’ 분야에서 지난 2013년 블루벨트(2급 공인전문검사) 인증을 받은 데 이어 2017년 블랙벨트(1급 공인전문검사)를 받은 최초의 검사다.

박윤석 수원지검 부장검사./성형주기자


대다수 검사가 살인·강간 등 강력 범죄 피의자 수사에 집중할 때 그는 사각지대인 인권에 관심을 갖고 피해자에 주목했다. 검찰 내에서 박 부장검사가 피해자를 향한 검찰의 시각을 반전시킨 데 일등공신으로 꼽을 만큼 이 분야에 최고로 꼽힌다. 현 대검찰청 예규 ‘범죄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업무 처리 지침’의 기반이 된 ‘범죄피해자 실질 매뉴얼’은 그가 평검사 시절 홀로 만든 작품으로 검찰 내에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박 부장검사는 “강력 범죄는 국가나 사회에도 책임이 있는 사건인 만큼 피해자들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 부장검사가 피해자 지원 부분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부터였다. 군사정권을 거친 이후 시대적으로 형사소송법에 고문 금지 등 피의자·피고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매우 드물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도 피고인은 421회, 피의자는 160회씩 언급되는 데 반해 피해자는 59회 밖에 나오지 않는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역으로 법적 사각지대 놓인 것이다.

잠재됐던 문제 의식은 검사 임관 후인 2003년 전주지방검찰청에서 성폭력을 당한 세탁소 여주인 사건 수사 과정에서 발현됐다. 가장 고통받는 피해자였던 여주인은 주변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계 수단인 세탁소 문을 닫고 지역을 떠나야 했다. “현재 같은 매뉴얼이 있었다면 당시 세탁소 아주머니도 주거 안정자금과 아이들 학비, 생활비 등을 보조받는 등 여건이 훨씬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지금도 종종 들어요.” 박 부장검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관련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피해자 지원 전담 검사를 자청하면서부터다. 2010년 8살짜리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이른바 ‘김수철 사건’을 계기로 전국 범피센터의 피해자 지원 실태를 살펴봤다. 일회성 지원 외에 후속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후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재직 시절인 2011년 평검사 신분임에도 1년간 범죄피해자 실질 매뉴얼 개발에 매진했다. 박 부장검사는 “강력 사건 수사 업무를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사실상 혼자 작업을 수행했다”며 “실질 매뉴얼 개발은 여러 피해자 보호 업무 가운데서도 지금껏 가장 보람 있는 성과”라고 했다.

같은 해 범피센터 안에 가정문제상담소를 개설한 것도 그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습관적으로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심리상담 전문가와 상담하는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비슷한 피해를 겪은 사람끼리 만남을 주선해 아픔을 나누게 하는 ‘자조모임’도 그가 주도한 활동이다. 그는 피해자 관련 논문으로 2011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블루벨트와 블랙벨트를 잇따라 받은 뒤에도 피해자 지원 분야에 대한 그의 연구는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 수원지방검찰청 발령 직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파견 온 뒤에도 범피센터 실무진들을 위해 ‘범죄피해자보호의 이론과 실무’라는 교육용 교재를 집필했다. 그는 연구원 전체에서 유일한 검사다. 박 부장검사는 “블랙벨트 인증을 받은 이후에는 후배 검사들에게 피해자 지원 업무에 대한 조언도 많이 하고 있다”며 “국가 전체적으로 피해자 지원이 필요한 큰 틀의 콘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숙제”라고 조언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프로필

△1964년 전북 정읍 출생 △1983년 정읍고 △1987년 동국대 법학과 △2000년 사법연수원 수료 △2013년 블루벨트 인증 △2014년 전주지검 군산지청 부장검사 △2015년 대구지검 의성지청장 △2017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2017년 블랙벨트 인증 △2018년 수원지검 부장검사 및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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