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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파산선고 받은 경찰·변호사·교사 등 직업 유지 가능케 된다

개인파산 이용건수, 2013년 이후 줄곧 감소

회생법원, 개선방안 마련 위한 내부 논의 착수

파산선고 시 불이익 금지, 면책제도 확대 등이 핵심





공무원·경찰·교원·변호사·회계사·법무사 등이 파산선고를 받아 결격사유가 발생해도 직업과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또 채권자의 이의 제기가 없으면 파산신청자를 심사하지 않고 면책을 허가하는 ‘무(無)심사면책제도’ 도입과 개인파산 신청절차 간소화도 추진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이달 초 회생법원장과 수석판사 등이 내부 세미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신(新)개인파산제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검토 중인 개선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파산 선고 시 불이익 금지 △무심사면책제도 도입 △제출 증빙서류 간소화 등이다. 2017년 파산전문법원이 출범했지만 개인파산 사건 처리에 대한 국민의 호응도가 낮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회생법원이 내부적으로 대안 찾기에 나선 것이다. 회생법원은 연내 이와 관련한 태스크포스팀(TFT)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회생법원이 개인파산제도를 점검하고 나선 것은 개인파산제도 이용 건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회생법원의 역할론에 회의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2013년 말 기준 5만6,983건이었던 개인파산제도 이용 건수는 지난해 말 4만3,397건으로 23%나 급감했다. 10만5,885건에 달했던 개인회생제도 이용 건수 역시 2017년 8만건대로 대폭 줄었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채무자들의 호응도가 낮은 원인으로 엄격한 심사방식과 복잡한 절차 등이 꼽힌다”며 “더구나 파산선고 혹은 면책이 불허될 경우 채무자가 직업을 잃게 되는 등 불이익이 커 개인파산제도를 선택지로 생각하지 않고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으로 쏠리는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개인회생·파산을 신청하려는 채무자들이 지난 10일 서울 서초동 회생법원 접수실에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백주연기자


■ ‘파산=불성실’ 꼬리표, 차별금지 불구 200개 법령서 ‘결격’ 규정

개인파산제도 이용 건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개인회생제도 실적마저 금융위원회 산하 신용회복위원회가 운영하는 개인워크아웃에 추월당하면서 회생법원의 위기의식이 크다. 저소득·저신용 계층의 발길이 줄면서 회생법원의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2월 신용회복위원회가 ‘특별감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서비스를 더욱 강화하고 나서자 회생법원 내부에서도 제도 개선을 통해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6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이용 건수는 2014년 7만3,925건에서 지난해 9만3,136건으로 증가 추세다. 여기에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 채무자 계층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상환 의지만 확인되면 잔여 채무를 면제하는 특별감면제도가 올해 도입되면서 개인워크아웃을 이용하는 채무자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회생법원이 위기의식을 갖고 파산선고로 인한 취업 불이익이나 결격사유 등의 법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 마련에 시급히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2006년 신설된 ‘채무자 회생·파산에 관한 법률’ 제32조 2는 ‘누구든지 이 법에 따른 회생·파산절차 또는 개인회생절차 중에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취업 제한 또는 해고 등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재 공무원·교원·변호사·회계사·법무사 등이 파산선고를 받으면 결격사유에 해당돼 직업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일반직·별정직 공무원만 파산선고 이후 면책허가가 날 경우 예외적으로 직업을 유지할 수 있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채무자회생법에 차별을 금지하도록 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산선고 자체를 결격사유로 보는 규정들이 약 200개 법령에 흩어져 있다”며 “파산선고 자체가 불성실의 징표로 인식되는 것은 채무자 갱생이라는 도산제도의 목적에 반하고 법 취지와도 모순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파산선고’라는 용어를 순화한다. ‘파산절차 개시 결정’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채무자에게 ‘실패자’라는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파산신청자가 면책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한다.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파산신청자를 심사하지 않고 면책을 허가하는 ‘무(無)심사 면책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기업회생 사건에서 적용하는 채권자협의회 강화 등 당사자주의적 요소를 개인파산제도에도 도입하자는 의미다.

권민재 회생법원 판사는 “민사사건의 강제조정이나 화해권고 결정에서도 채권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며 “면책제도로 직접 손해를 입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면책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도 법원이 이를 엄격하게 심리해 불허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채권자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채권자에게 채무자의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방침이다.

파산신청·심사에 필요한 서류와 소명자료 범위도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절차가 하도 복잡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신청이 가능한 탓에 채무자들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신청을 꺼릴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운 좋게 대한법률구조공단이나 서울변호사회 등에서 지원하는 파산 전문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도 제출자료를 내기가 쉽지 않다.

파산부를 담당했던 판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소득이 없다는 소명을 위한 자료가 까다롭고 방대해 장관 임명 청문회보다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며 “개인파산절차에서 법원이 방대한 소명자료를 요구하고 엄격한 심사만을 고집하는 것은 제도 도입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산관재인들의 심사 방식도 바꾼다. 법원이 선임하는 파산관재인은 채권을 회수해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역할을 담당하며 주로 변호사가 맡는데 마치 수사기관이 피의자 다루듯이 심사를 해 채무자들이 기피하게 된다는 지적에서다. 법원은 또 파산관재인과의 만남 횟수를 늘리는 등 소통에 노력해 채무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할 방침이다. 서경환 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는 “미국은 개인도산(회생·파산) 사건 중 파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인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개인파산 비율이 32%에 그쳤다”며 “제도 개선을 통해 정기적 소득 없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저소득자들이 개인회생을 이용하는 경우 개인파산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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