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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창] 무역분쟁 2라운드, 1980년대의 데자뷔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협상이 조기에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기념비적인 합의가 될 것이라고 자찬했다. 주가는 이런 기대감을 이미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중의 타협 조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보호무역의 전선이 유럽과 일본 등으로 확대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걱정스럽다. 미국이 에어버스에 대한 유럽연합(EU)의 보조금 지급을 문제 삼아 보복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최신 소식이지만 이미 다른 전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독일이 미국의 반(反)화웨이 전선에서 이탈했고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한편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일본의 환율조작 문제를 무역협정에 포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지난 1980년대 무역분쟁의 전개 과정을 떠올리게 해준다. 당시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수지 적자에 노출된 미국은 보호무역이라는 칼을 휘둘렀다. 국가 간 무역수지는 제로섬 게임이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미국 외 국가들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의 합이다. 1980년대에도 미국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가장 큰 국가들부터 공격했다. 트럼프 정권 출범 후 중국이 타깃이 됐듯 말이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로 대미 무역수지 흑자 1·2위국인 일본과 서독의 통화가치 절상을 압박했다. 동서 냉전 시대였기에 자본주의 블록의 절대 리더인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국가는 없었다.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는 빠르게 절상되면서 미국의 기대에 부응했다. 환율을 통해 대미 무역수지 1·2위 국가들에 타격을 입힌 후 미국의 타깃은 세컨드티어 무역수지 흑자국들로 향했다.



1987년 2월 루브르합의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내수 부양을 촉구했다. 이때 미국은 플라자합의 이후 달러화 대비 이미 35%와 34% 절상된 엔과 마르크의 추가 절상을 압박하지 않는 대신 강력한 내수 부양을 촉구했다. 미국 외의 국가들이 내수 부양을 통해 미국 상품을 구입해달라는 것이 루브르합의의 정신이었다.

한국은 루브르합의의 정신을 가장 잘 이행한 국가였다.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노태우 정권의 가장 중요한 경제공약은 200만채 주택 건설이었다. 이는 주택공급 확대라는 한국 사회 내부의 요구에 부응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미국 외 지역의 수요 진작이라는 루브르합의의 정신에 가장 잘 부응하는 대역사(大役事)이기도 했다. 이후 1988년 미국은 강력한 통상규제 법안인 ‘슈퍼301조’를 발효했고 그해 여름 한국과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1980년대 무역분쟁의 1라운드에서는 일본과 서독이 타깃이 됐고 2라운드에서는 한국과 대만 등이 타격을 받았던 셈이다.

이번에도 미중 무역분쟁 봉합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양국이 타협점을 찾더라도 보호무역이라는 유령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후 중국을 일방적으로 공격했음에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오히려 확대됐다. 트럼프 집권 후를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세계 3위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고 독일은 4위, 이탈리아는 7위이다. 한국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흑자 순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보호무역에 대한 긴장을 늦출 시기는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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