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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게르니카의 비극

1937년 독일, 무차별 폭격

[오늘의 경제소사] 게르니카의 비극
스페인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에 소장된 피카소의 ‘게르니카’.

1937년 4월26일 오후4시30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고도(古都) 게르니카. 스페인의 파시스트 반란군을 지원하는 독일 공군의 폭격기 한 대가 중심가에 폭탄을 떨어뜨렸다. 15분 뒤 이탈리아까지 가세한 20여대의 폭격기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4시간 동안 이어진 폭격으로 건물의 70%가 무너졌다. 독일 전투기는 병원의 수녀들과 어린아이들, 가축에까지 기총소사를 퍼부었다. 마침 장날이어서 주민 7,000명뿐 아니라 다른 지역 주민 3,000명이 더 있던 상황. 바스크 주 정부 발표에 따르면 889명이 다치고 1,654명이 죽었다.

독일과 반란군은 왜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했을까. 독일 공군 사령관이던 헤르만 괴링은 1947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빨갱이의 확산을 막기 위해 프랑코 군을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은 재탄생한 공군을 시험할 기회였다.” 구체적인 공습 목표는 바스크에 주둔한 정부군 2개 대대와 통신센터, 무기공장과 교량 두 곳. 그러나 지독한 공습에도 교량은 끊어지지 않았다. 도시에 폭격을 집중한 탓이다. 프랑코 반란군은 ‘공포와 전율(Fear and Tremble)’로 반(反)파시스트 경향이 강한 바스크의 전의를 꺾으려 민간인을 죽였다.

사람들은 게르니카 공습은 잘 몰라도 ‘게르니카’는 기억한다. 화가 피카소가 만행을 고발한 작품 ‘게르니카’를 통해서다. 대작 ‘게르니카’가 순식간에 널리 알려진 데는 다른 요인도 있다. 선거로 구성된 좌파정부를 전복하려는 스페인 군부와 싸우려 세계 53개국에서 모인 국제여단의 명분과 대의·시대정신이 있었기에 게르니카의 비극은 세계인의 공분을 샀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와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국제여단 소속 병사로 총을 들었다.

조지 오웰은 국제여단 경험을 바탕으로 ‘동물 농장’과 ‘1984년’을 썼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는 미국인 대대를 취재하는 종군기자 헤밍웨이가 로버트 조던 몬태나대 교수의 참전과 죽음을 작품화한 것이다. 게르니카 86주년. 자유를 말살하려는 ‘공포와 전율’은 없어졌을까. 프랑코의 어용신문들은 1970년까지 게르니카의 희생자는 12명이라고 우겼다. 피카소가 전쟁의 참상을 그린 또 하나의 땅, 한반도에서도 게르니카의 유령이 출몰한다. 광주학살의 가해자를 비호하는 언어폭력이 횡횡하는 세상이라니.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생텍쥐페리의 문구가 떠오른다.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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