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이면 식당마다 대기인원으로 골목이 막히는 익선동. 이곳에서 작은 사무실을 빌려 썼던 김진미(가명)씨는 많은 소상공인들이 이 거리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증언한다. 유동인구 증가로 매출은 늘었지만 재계약 때마다 배가 넘게 뛰는 월세 때문이라고 김씨는 전했다. “이 동네에서는 더 높은 가격을 제안하는 사람이 오면 어쩔 수 없어 새 계약서를 내미는 건물주와 합의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고 말했다.
# 성수동에는 요즘 카페와 식당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1년도 안 돼 8곳은 문을 닫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인증하러 온 관광객들이 이 골목을 찾았지만 재방문은 거의 없다. 인근에서 3년째 동남아 음식점을 운영하는 B씨는 “성수동이 분명 커가는 상권이라 버티고 있지만 결국 일부만 살아남는다”면서 “치솟는 인기에 임대료도 꽤 올라 (성수동에서) 새로 장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물어가는 상권이 있는가 하면 뜨는 상권도 있다. 문제는 쇠퇴 상권도 이전에는 다 뜨던 곳이었다는 것. 서울에서 ‘핫플레이스’ 지위를 이어받은 종로구 익선동과 성동구 성수동 상권에서도 몸살을 앓는 상권과 같은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 상권 자료에 따르면 성수1가 점포 수는 2016년 4·4분기 586개에서 지난해 말 636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안에서는 과거 원조 상권이 겪었던 문제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골목 전체가 광고판…약육강식 위에 핀 꽃=익선동 한옥과 한옥 사이의 좁은 골목길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한다. 본지가 찾은 이날도 레트로풍 인테리어를 적용한 매장 안에는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유명한 분식집과 팬케이크 가게 앞에는 수십여명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야말로 거리 자체가 콘텐츠다. 삼성전자는 올 2월부터 ‘팝업스토어’를 차리고 이 골목을 휴대폰 마케팅 무대로 활용 중이다. 새로 생겨나는 점포도 꾸준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불안한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이 늘어나는 가운데 임대료도 상승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가 뜨면서 반대급부로 임대료와 낡은 한옥값은 치솟고 있다. 익선동 S공인 관계자는 “워낙 장사가 잘되다 보니 6.6㎡도 안 되는 자리가 월세 150만원에 달한다”면서 “얼마 남지 않은 주거지는 희소성으로 최고 3.3㎡당 7,500만원까지 올라도 집주인은 절대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상권의 수혜를 입으려는 이들의 ‘막차 타기’가 언제까지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단기간 매출을 크게 올린 뒤 인테리어 정비나 업종 변경에 나서기 일쑤다. 익선동 상권을 일으켰던 익선다다의 식당 두 곳도 두 달째 문을 닫고 있다.
◇천천히 밀려나거나 오래 살아남거나=성수동 상권은 이제 시작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올해 초 새로 문을 연 ‘성수연방’은 성수동 카페거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다시 한번 집중시켰다. 성수동2가 주변 상권은 2014년 이후 인쇄소와 정미소를 개조한 ‘자그마치’와 ‘대림창고’가 들어서며 카페·복합 문화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이면도로 다가구 주거 시설이나 비주거 건물의 상가주택 전환도 지속되고 있다. 골목 초입 1층 50㎡ 피자집은 이달 보증금 3,000만원, 월세 250만원 수준에 계약됐다. 권리금도 이전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랐다. 성수동 B공인 관계자는 “성수동은 다른 상권에 비해 불황 없이 커가고 있다”면서 “오피스 수요에 맞춰 테이크아웃 카페나 식당, 펍 업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따라 기존 피혁 가게들은 밀려나고 있다. 성수연방 바로 앞에 위치한 거산화학 관계자는 “신발 회사에서 차를 가지고 들어와 샘플을 나르지만 유동인구가 늘어 주차금지 팻말을 깔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우리 같은 업종들은 임대료도 오르고 영업이 불편해 한강변 성수 재개발 구역으로 공장과 가게를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 주변 성수동1가 쪽도 최근 폐업 가게가 늘었다. 지난해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몇 개의 가게가 생겼지만 대부분 몇 개월 되지 않아 장사를 접었다. 5월 ‘블루보틀’이 문을 열 예정인 뚝섬역 쪽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1층 상가(66㎡) 점포의 경우 건물주가 월 임대료 350만원을 고수해 수개월째 공실이다.
성수동 상권의 점포 생존율을 보면 이상 조짐이 나온다. 5년간 점포 생존율은 2년간 33.3%에서 45.2%로 개선되고 있지만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면 52.1%에서 47.7%로 하락했다. /이재명·이수민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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