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연맹(UEFA)이 9일(한국시간) 인스타그램에 올린 포스터 형식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홍보물에는 토트넘 구단 로고를 가리키며 포효하는 손흥민(27)이 들어 있다. 월드컵 결승과 비교되는 축구 최고의 무대인 챔스 결승을 손흥민이 휘젓는다. 독일 레버쿠젠 소속이던 지난 2013년 9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챔스 데뷔전을 치른 후 6년 만이다.
한국인으로는 맨유 시절의 박지성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다. 박지성은 2009년과 2011년 결승을 뛰었다. 앞서 2008년에는 결승 출전선수 명단에서 제외됐으나 맨유는 우승컵인 ‘빅 이어’를 차지했다. 손흥민은 한국인 최초의 챔스 결승 득점에 도전한다. 현장에서 빅 이어를 들어 올린다면 한국 스포츠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될 것이다. 토트넘과 리버풀의 단판 결승은 다음달 2일 오전4시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다.
잉글랜드 클럽끼리의 챔스 결승은 2008년 맨유-첼시전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는 맨유가 승부차기 끝에 이겼다. 올해는 토트넘이나, 리버풀이나 거짓말 같은 역전 드라마를 쓰고 올라온 터라 더 흥미진진하다. 토트넘은 사상 첫 결승이고 리버풀은 2년 연속이자 통산 아홉 번째 결승에서 여섯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맞대결에서는 두 번 다 리버풀이 똑같이 2대1로 이겼다.
FC바르셀로나와 4강 1차전 0대3 패배를 전날 리버풀이 2차전 4대0으로 뒤집을 때만 해도 그 이상은 없을 것 같았지만 토트넘은 종료 휘슬 직전에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며 세계 축구판을 다시 한번 뒤집어놓았다. ‘안필드 기적’을 잇는 ‘암스테르담 기적’이다. 4강 홈 1차전 0대1 패배 뒤 9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원정 2차전에 나선 토트넘은 전반까지 0대2로 끌려갔다. 아약스의 결승행이 당연해 보였지만 드라마는 후반 10분부터 시작됐다. 루카스 모라가 후반 10분과 14분에 연속골을 넣었다. 두 번째 골이 압권이었다. 문전 혼전 중에서도 수비진을 다 따돌리고 다리 사이로 터닝슛을 넣었다.
결승에 필요한 1골은 96분에 터졌다. 델리 알리가 내준 공을 모라가 논스톱으로 깔아 차 골문을 열었다. 토트넘 선수단은 펄쩍펄쩍 뛰었고 아약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3대2로 이긴 토트넘은 합계 3대3을 만들어 원정 다득점으로 결승에 올랐다. 챔스 4강 해트트릭은 역대 다섯 번째 기록으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도 해본 적 없다. 토트넘의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잉글랜드에 모라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했고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축구에 감사를 보낸다. 우리 선수들은 영웅들이고 모라는 슈퍼히어로”라며 눈물을 보였다. 포체티노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장신 공격수 페르난도 요렌테를 투입해 흐름을 바꿔놓았다.
브라질 출신으로 지난 시즌 토트넘에 합류한 모라는 올 시즌 초반 손흥민의 아시안게임 차출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EPL 이달의 선수에 오르기도 했던 윙어다. 지난달 리버풀과 EPL 경기에서도 골을 넣었다. 앞서 맨체스터 시티와의 8강 2경기에서 3골을 터뜨렸던 손흥민은 이날 골대를 한 차례 맞히는 등 풀타임 활약하며 통계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 평점 7.9점을 받았다. 10점 만점의 모라에 이은 팀 내 두 번째다. 1차전에 경고누적 결장으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던 손흥민은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내 조국, 토트넘에 역사적인 날이다. 정말 믿기 힘든 밤”이라고 감격해 했다. 결승에는 주포 해리 케인이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발목 부상 탓에 관중석에 앉아 있던 케인은 경기 후 그라운드로 내려가 토트넘 선수단과 기쁨을 나눴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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