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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EU 압박에 '親勞 일방통행'...해고자 노조 가입 등 논란 예고

['ILO협약' 대놓고 勞 편든 정부]

통상문제 해결 시급한데 노사정 논의 지지부진하자 급선회

핵심협약 3개 우선 비준...9월 정기국회 목표로 추진

공무원 노조설립 등 민감 사안 놓고 국회 충돌 불가피

이재갑(왼쪽)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굳은 표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결국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 개정안을 내는 ‘피하고 싶은 결정’을 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문제로 EU의 압박이 거센 와중에 정부는 비준을 위해 행동에 나선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실패한 상황에서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바꿔 사실상 ‘선(先) 비준’ 카드를 내놓았지만 경영계의 거센 반발 속에 해고자 노조 가입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국회에서도 논쟁이 불가피해 전망이 밝지 않다.

22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의 브리핑을 살펴보면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지난 2011년 비준한 EU와의 FTA 위반 문제였다. EU가 지난해 12월 한국 정부에 ILO 핵심협약 미비준이 FTA 위반 소지가 있다며 협의 요청을 전달했고 90일 이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 장관은 “EU는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전문가 패널에 회부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며 “EU가 협약 비준에 관한 한국 정부의 공식 계획을 계속 요구하고 있어 이렇게 공식 발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전문가 패널을 거쳐 한국의 한·EU FTA 위반이 확정되면 EU가 관세 조치와 수출입물량 제한 외에도 조세, 규제, 공공조달, 기업 보조금 등 다양한 제재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EU FTA 제13조 4항 ‘다자간 노동 기준과 협정’에는 ‘ILO 핵심협약 및 주요 협약들을 비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EU는 FTA 체결 후 8년이 흘렀는데도 한국 정부가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실질적 진전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협정 위반이 아니냐는 얘기이고, 우리 정부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23일부터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항을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으며 선거 후 압박이 더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EU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미국 등과 달리 노동기본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 EU는 우리나라를 지렛대 삼아 일본 등 FTA를 체결한 국가에도 노동기준과 관련해 강한 요구를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 장관은 “FTA에 무역제재는 없지만 EU가 최근에 무역과 사회적 기준 간 연계를 굉장히 강화하고 있다”며 “이달 초 중국에 대해서도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시장 기반 임금설정체계가 발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덤핑 관세를 연장해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EU의 압박이 거세진 상황에서 정작 노사정 논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지난해 7월부터 의제별 위원회, 운영위원회 등을 거쳤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EU의 압력이 강한데도 경사노위에서 성과 없이 논의가 종료되자 정부도 비준동의안을 관련 법안과 함께 올리는 카드를 꺼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로서는 피하고 싶은 선택을 마지못해 한 셈이다. 그동안 ‘선 입법, 후 비준’을 줄곧 주장해온 정부로서는 비준동의안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노동계가 요구한 ‘선 비준, 후 입법’ 로드맵으로 넘어간다는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사노위에서 협상도 매듭짓지 못했는데 정부가 말한 대로 노사·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한 법 개정안을 만들기가 원활할 것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사실상 ‘선 비준론’으로 한 발 나아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번 조치가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 개정을 동시에 준비할 뿐 선 비준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노동계에서 요구하는 대로 비준동의안만 국회에 제출할 경우 동의안이 처리된 후 1년 안에 협약과 부딪히는 국내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치적 부담이 엄청나게 큰 선택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고용노동부가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나면 정부가 할 일은 사실상 마무리된다. ILO 협약처럼 국내법과 부딪혀 법 개정이 필요한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은 국회가 동의권을 갖기 때문이다. 정부는 오는 9월 시작하는 정기국회에서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안을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국회에서는 공익위원이 두 차례에 걸쳐 권고안으로 낸 모든 사안이 쟁점으로 떠오를 판이다. 가장 큰 쟁점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부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이 경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화된다는 점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외 공무원·교원 노조 가입 허용,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 설립 허용 등 어느 것 하나 논쟁이 예상되지 않는 게 없다. 반면 단체협상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 등 2차 공익위원 권고안에 실린 내용은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는 “국회 통과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원활히 처리되려면 노동계도 무조건적인 자기주장보다는 주고받기식 협상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으로 정치권 논의도 험로가 불가피하다. 이번 정기국회 내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내년 총선 이후로 원점에서 비준 논의를 다시 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하지만 협약 비준과 관련한 여야 간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여야 4당과 제1야당인 한국당이 대립 중이어서 논의가 원활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내년 4월에는 총선도 있다. 게다가 정기국회 기간에는 주로 국정감사, 내년도 예산안 심의 등의 일정이 차 있어 법안을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적다. 이 때문에 정부가 ‘비준동의안을 냈다’는 상징적 의미 외에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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