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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탈원전’을 부정하는 억지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정부 "탈원전 60년 걸려" 주장에도

2년새 핵심인력 이탈 265명 달해

관련 정비 부품산업 기반마저 흔들

이덕환 서강대 교수




탈원전의 부작용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정비계약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60년 이상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했던 알토란 같은 정비계약이 5,000억원 규모의 자투리 사업으로 전락해버리고 있다. 수익과 일자리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중한 노하우를 미국·영국의 경쟁사들에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UAE가 우리에게 정비계약을 통째로 맡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탈원전을 선언한 후 우리의 원전산업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전문 인력이 빠른 속도로 이탈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원전 공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한 인력이 265명에 이르고 그중 14명이 UAE로 떠나버렸다. 미래 인력을 양성하는 원자력공학과도 무너지고 있다. 원전 정비에 꼭 필요한 부품산업의 기반도 흔들리고 있다. 오히려 원전을 지어놓고 뒷감당을 하지 않는 우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은 것이 UAE의 속내일지도 모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에도 ‘가짜 뉴스’라고 펄쩍 뛰고 있다. 모든 원전이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탈원전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탈원전은 60년 후에나 시작될 일이고 현재 정부는 합리적인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에게 아직 멀쩡하게 폐는 작동하고 있으니 고열만 잡으면 된다는 돌팔이 의사의 엉터리 진단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황당한 궤변이다.

탈원전은 명백하게 현재진행형이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사를 중단시켰고 신규 원전 6기의 건설을 백지화시켰다. 8,000억원을 들여 손질해놓은 월성 1호기도 영구정지시켜버렸다. 지난해에는 멀쩡한 원전의 가동률을 65%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그 과정에서 법과 제도는 철저하게 무시됐고 낭비된 비용은 추정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우량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통째로 엄청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불량기업이 돼버렸다.



앞으로의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전문 인력이 떠나고 부품산업이 무너지면 남아 있는 원전의 안전운전은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꿈이 돼버린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워온 원전 기술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안전성과 기술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한국형 원전 ‘APR-1400’은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릴 것이다. 당장 불법적으로 중단시켜놓은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이라도 재개하지 않는다면 내년부터 우리는 원전의 자력 건설도 불가능해진다.

전기요금 인상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한전이 적자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이유가 탈원전과 무관하다는 궤변은 설득력이 없다. 지난 2년 동안 우리의 연료 구입비가 77%나 늘어난 것은 온전하게 탈원전의 결과다. 더욱이 불안한 국제 정세에 연료 가격은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여전히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래 기술인 태양광·풍력·수소를 믿을 수도 없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일어난 끔찍한 폭발 사고에도 수소를 안전하고 깨끗한 연료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원전을 포기해버리면 국제 사회에 자발적으로 약속해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도 불가능해진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이 탈원전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진실이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습니다.’ 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었다. 그런데 ‘탈핵국가’ 선언으로 시작해 ‘에너지 전환’으로 어설프게 포장해놓은 탈원전이 바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괜한 억지로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을 망쳐버려서는 안 된다. 취임사에서 약속했듯이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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