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청소년 보호법’을 오히려 청소년이 악용하면서 청소년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청소년 본인은 처벌받지 않는다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광주 광산 경찰서에 따르면 광주 한 PC 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강 씨(21)는 ‘늦은 밤 PC 방에 청소년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 청소년은 밤 10시 이후 심야 시간대 PC 방을 이용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형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해당 법을 어기면 영업 책임자인 PC 방 주인과 아르바이트생 모두 ‘범죄 행위를 직접 저질렀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이 된다. 특히 아르바이트생의 경우 실질적인 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범죄 이력에는 수사기록이 남는 ‘날벼락’을 맞는다.
강 씨의 사례뿐만 아니라 위·변조한 신분증을 이용한 청소년을 출입시켰다가 단속에 걸리는 아르바이트생도 비일비재하다. 광산경찰서에서만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1년 동안 심야 시간대 청소년을 출입시킨 PC 방 아르바이트생 9명이 입건되기도 했다. 하지만 PC 방 이용자인 청소년들은 소년법이 적용돼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소년법에 따라 19세 미만인 청소년은 형사 처분에 대한 조치에서 성인과 다른 기준을 적용 받기 때문이다. 이들은 PC 방 이용요금 또한 안 내도 된다.
소년법·청소년 보호법을 악용하는 사례는 음식점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25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한 음식점에서 내건 현수막이 논란을 키웠다.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이 음식점의 사장은 청소년의 자진신고로 영업을 정지당했으며 “미성년자들이 새벽 2시 넘어 들어와 25만 7,000원 어치 술을 마시고 자진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장은 “주방 이모, 홀 직원, 알바(아르바이트생)들도 다 피해자”라며 “이 집에서 끝내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경우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술을 판매한 업주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된다. 또 식품위생법 제75조에 따라 식품접객영업자가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했을 경우 영업허가 또는 등록의 취소·최장 6개월의 영업정지 및 영업소 폐쇄 등의 행정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이 역시 청소년은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공문서 위조’, ‘위조 공문서 행사’ 등의 혐의에도 ‘청소년법’에 의해 간단한 훈계와 함께 귀가 조치 될 뿐이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 씨는 “비슷한 경우로 곤혹을 치를 뻔한 경험이 많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 일하는 직원이 실수로 술을 갖다 줄 뻔한 적이 있었다”며 “학생 같이 보여 신분증을 검사하려 하니 ‘단골’이라며 넘어가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술집이라면 위조 신분증을 판별하는 기계를 들여놓고 입장할 때부터 검사하겠지만 일반 음식점의 경우 그러긴 힘들다”며 “위조 신분증을 판별하지 못하면 처벌받는 것은 업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업주의 억울함을 풀어줄 법안이 오는 12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신분증 위조ㆍ변조ㆍ도용 또는 폭행ㆍ협박에 의해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 경우 사업자에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이 담긴 ‘식품위생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식품접객영업자가 청소년의 신분증 위ㆍ변조 또는 도용으로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폭행 또는 협박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행정처분을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청소년 법의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12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음주’에 대한 업주의 억울한 행정 처분에 한정되고 법을 어긴 당사자인 청소년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미비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실질적 처벌에 대한 논의가 없던 것은 아니다. 신분증 위조 등을 통한 청소년의 위법행위에 대해 이들에게도 처벌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청소년 쌍벌제’의 공론화 필요성은 계속해서 제기됐다. 지난해 5월에는 이혜훈 바른 미래당 의원이 ‘청소년 음주 쌍벌제법(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타인의 신분증을 위조해 나이를 속이거나 무전취식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청소년에겐 학교장, 학부모에게 통보 후 사회봉사 특별교육 등의 벌칙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청소년 쌍벌제가 국회의 문턱을 넘은 적은 없다.
한편 지난 6일 심야시간 대에 청소년을 출입시켰다는 이유로 피의자로 입건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과 관련해 이 사건을 담당한 광주 광산경찰서는 제도 허용범위 안에서 구제 방안을 찾는 중이다. 광산경찰서는 생활고 등으로 소소한 범죄를 저지르는 시민을 즉결심판에 넘기는 결정과 같은 맥락에서 PC방 아르바이트생 관련 사건을 즉결심판 청구로 종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즉결심판으로 넘어가면 경찰서에 출석해 피의자 진술을 하지 않아도 되고 수사기록이 남지 않는 20만 원 이하 수준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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