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3시. 서울 광화문광장에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의 천막 6개 동이 다시 설치됐다. 이날 서울시가 오전5시 해가 뜨자마자 900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2시간30분 동안 47일 전에 설치된 천막 3개 동을 간신히 걷어냈으나 불과 5시간 만에 허사가 된 것이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철거하면 두 배의 천막을 치고 광장을 덮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섭씨 32도를 기록한 이날 강한 햇빛 사이로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광장을 둘러싸며 행진했다. 각목으로 얼기설기 세워놓은 천막 아래서 시위자들은 다시 장기전에 돌입했다.
오는 8월 개장 10년을 맞는 광화문광장이 좌우 이념단체와 노동계가 세력을 과시하는 대결의 장으로 전락했다. ‘민주주의의 성지’였던 광화문광장이 ‘극단의 정치·노동광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광화문광장을 시민의 품에 돌려주기 위해서는 서울시 등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4면
고병국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종로1)이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받은 ‘2018년 광화문광장 주변 집회 신고 현황’을 서울경제가 25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총 시위건수(신고일 기준)는 675건, 총 참가자는 95만 9,090명에 달했다. 하루 평균 1.85건의 시위에 2,628명이 참가한 것이다. 태극기시위와 민주노총, 극좌단체(백두칭송위원회 등)의 시위건수가 61%에 달했다. 태극기시위가 206건, 민주노총 집회가 88건, 그리고 진보시민단체 시위가 118건 등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초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하며 “광화문광장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이자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밝혔지만 실상은 이념·정치시위가 대부분이었던 셈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광화문광장은 극단적 단체들의 세력 과시보다 평범한 시민과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재현·이희조기자 humbleness@sedaily.com
정치시위도 문화제로 변칙 신고...“광화문광장 집회 휴무제 고민해야”
[광화문광장 시민을 품어라]
‘태극기’ 매주 토요일 집회...민노총 모이면 5만명 달해
내달 총파업·최저임금 심의 등 겹쳐 시위 몸살 불보듯
“광장에 휴식” 조례 개정 검토...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
광화문광장 주변은 매주 토요일이면 태극기집회로, 평일에도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많게는 수만명을 끌어모으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 집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건전한 여가와 문화를 위해 조성된 광화문광장에서도 변칙적인 방법을 앞세운 사실상의 불법 집회·시위가 벌어진다. 허가제로 운영되지만 과격한 집회·시위의 가능성이 예상되더라도 ‘캠페인·문화제’로 신청하면 지방자치단체도 반려할 방법이 없다. 광화문광장과 주변이 좌우 정치대결과 노동계 시위로 몸살을 앓으면서 시민들은 “통행조차 할 수 없다” “걷기도 싫어진다”는 불만을 거세게 토해내고 있다. 건전한 의견 표출을 넘어 이념대결의 장으로 변질된 광화문광장에 이제는 ‘휴식을 줘야 한다’는 제도적 개선을 향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태극기에 민주노총까지 ‘와글와글’…광장 내부서도 변칙 ‘문화제’ 시위=고병국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종로1)이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8년 광화문광장 주변 집회 신고 현황’을 25일 서울경제가 분석한 결과 태극기 계열 집회는 매주 토요일 빠짐없이 시위를 벌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을 촉구하는 ‘천만인무죄석방본부’와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등이 주요 집회 세력으로 하루 기준으로 적게는 1,000명, 많게는 1만명을 동원했다. 민주노총의 시위 건수는 태극기집회의 절반도 되지 못했지만 일단 한번 개최되면 대규모 인파를 끌어모았다. 지난해 3월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안을 추진하자 민주노총은 같은 달 24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 저지 집회’를 열어 5만명을 모았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자 6월30일 비정규직 철폐 전국 노동자 대회를 개최해 또다시 5만명을 모았으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추진된 지난해 11월10일에는 총 6만명을 동원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최저임금 등 노동 이슈, 택시 생존권 사수 등 카풀 문제, 여성 문제 등으로 사실상의 집회·시위가 15건 개최됐다.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광장의 사용 목적을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으로 규정해 집회·시위는 제외돼 있음에도 캠페인·문화제 등으로 변칙 신고해 허가를 따내고 있다. 이념의 양극화로 치닫는 광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대의민주주의제도가 있는데도 광장이 과열되고 있다”며 “기득권 세력까지 동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광장에 휴식 주자” 목소리에 조례 개정도 검토=올해도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은 서울시가 이날 오전 자신들이 지난달 설치한 천막의 철거(행정대집행)에 나서자 천막 여섯 동을 다시 세웠다. 인지연 공화당 대변인은 “서울시청 앞과 서울광장에서도 천막을 설치할 수 있다”고 말해 서울시와의 ‘천막 눈치게임’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김명환 위원장의 구속 이후 ‘문재인 정권과의 투쟁’을 선포한 민주노총의 시위도 광화문을 중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한 이상 광화문은 다시 ‘노총의 안마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민주노총 투쟁의 신호탄 성격인 ‘문재인 정부 노동탄압 규탄 권역별 결의대회’는 광화문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청와대 사랑채에서 오는 29일 개최된다. 민주노총은 또 ‘미국정부의 무기강매, 대북제재강요’를 규탄한다는 명목의 ‘NO 트럼프 범국민대회’를 같은 날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연다. 최저임금심의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 각종 노동 이슈가 몰려 있는 시점이어서 광화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집회·시위에 몸살을 앓는 사람들은 종로구 등 주변 주민들이다. 서울시도 ‘광장과 그 주변의 집회·시위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 주민 불편이 심각하다’는 목소리를 인지하고 있다. 서울시 광화문광장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집회·시위와 관련해 광화문광장의 운영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이라며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휴무일을 지정하자는 이야기도 (열린 광장 시민위원회의) 논의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규제’ 못지않게 ‘성숙한 시민의식’ 절실=하지만 엄연히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조례로 제한할 수는 없다. 김의승 서울시 대변인은 새롭게 설치된 공화당의 천막에 대해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돼 있어 설치를 무조건 못하게 강제할 수는 없다”며 “서울시는 행정절차에 맞춰 계고장을 보내고 행정대집행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집회·시위를 할 때 시민을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고 의원은 “과도한 집회·시위로 직간접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이 많다”며 “집회·시위 문화에 대해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광화문광장은 법 제도에도 기대기 어려운 이들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호소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며 “그래야만 광장이 명실상부하게 진정한 민주주의의 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변재현·이희조기자 humbleness@sedaily.com
신고 집회 2건 중 1건은 ‘뻥시위’ ··· 과태료 안내려 두세명 참가 ‘꼼수’도
[광화문광장 시민을 품어라]
경찰 미리 투입...행정력만 낭비
다양한 신념과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모여 각종 주장을 쏟아내는 광화문광장 일대는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 ‘용광로’다. 굵직한 사회 이슈들이 연달아 일어나며 광화문광장 일대는 연일 집회·시위로 시끌벅적하지만 신고만 하고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뻥 시위’도 함께 늘고 있어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25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집회는 총 896건이었다. 이 가운데 신고만 하고 실제 일어나지 않은 시위는 420건으로 전체의 47%에 달했다. 물론 이는 실제보다 과장된 수치일 수 있다. 집회가 신고되고 나면 경찰은 이후 지속적으로 개최 여부를 검토하며 집회 일정을 수정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렇게 수정된 사항이 일일이 집회 일정표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일선 경찰들은 여전히 이 같은 시위가 많이 발생한다고 입을 모은다.
뻥 시위는 단순히 개최되지 않은 시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위 인원이 나왔더라도 신고한 수보다 현격히 적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행진을 한다고 해놓고 실제 행진을 하지 않는 것을 비롯해 시위 규모를 과대 포장하는 시위 등을 총칭한다. 광화문 일대는 집회·시위의 ‘단골 장소’인 만큼 이곳에서 이런 시위가 많아질수록 다른 이의 표현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크다.
이는 경찰 행정의 효율적 운영을 저해하기도 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시위에 경찰력이 미리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집회 신고 이후 실제 집회가 개최될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노력과 인력이 든다.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의 한 관계자는 “집회·시위 신고 이후 실제 신고대로 집회가 일어나는지, 행진은 예정대로 하는지 관할 정보관들이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에 따르면 뻥 시위로 다른 이의 집회권을 침해한 주최 측은 과태료를 물어야 하지만 ‘꼼수’로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청 정보과 관계자는 “과태료를 물지 않기 위해 면피용으로 두세 명씩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사실 이런 경우를 시위라고 볼 수도 없지만 따로 규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주최 측의 책임의식도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허진기자 hjin@sedaily.com
김영종 종로구청장 “아이고” 한숨...“시위도 지역주민 배려 절실”
[광화문광장 시민을 품어라]
“주말 오후만 되면 난리”
김영종(사진) 종로구청장은 ‘광화문광장 근처 누적시위 675건, 총 참가자 95만명’이라는 말에 “아이고” 소리부터 토해냈다. 김 구청장은 집회·시위도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25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주민들이 주말 오후만 되면 난리”라며 “길을 막고 시위를 하니 차가 지나지도 못하고 음식점에서는 예약 취소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종로구 부암동·청운효자동·삼청동 등에서는 주말마다 집회·시위로 도로가 막혀 버스를 1시간 10분 동안 기다리는 일이 잦고 종로구 외부에서도 접근하기가 어려워 지역 상권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는 “시위대가 행진할 때 종로·을지로·헌법재판소 쪽으로 가면 여파가 서대문 로터리와 동대문까지 가버린다. 광화문광장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강북 전체 교통에 여파가 미친다고 지적했다.
김 구청장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적 가치인 만큼 행복추구권도 헌법에 명시돼 있다며 시위대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 구청장은 “시위하시는 분들이 지역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해 행진을 줄이거나 도로를 덜 막거나 하면 관광객·주민들이 많이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주민들 사이에서 헌법소원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은 ‘행복추구권’이 기본권의 모체인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되느냐는 이야기”라고 종로구민들의 의견을 전했다.
김 구청장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이후의 교통체증도 우려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광장 재구조화 안에는 왕복 10차선인 세종대로를 왕복 6차선으로 줄이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 구청장은 “(시위대가 행진하면) 상·하행 3차선이 사실상 2차선씩이 돼 버린다”며 “서울시에 왕복 8차선으로 하자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차선이 하나 더 있으면 통행에 영향이 덜 가지 않겠나. 그런 여유를 달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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