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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22> "美 밀어내 해양패권 확보"...中, 회색지대전술 등 총공세

미중 패권경쟁 전초전 '남중국해 분쟁'

2001년 美 정찰기-中 전투기 충돌 계기로 대립구도 가시화

中, 점령한 섬 군사기지화하고 대대적인 해상 군사훈련 펼쳐

영유권 주장하며 배타적경제수역서 美함정 등 움직임 제한도

美는 '항해의 자유' 내세워 맞불...무력충돌 우려 목소리 커져

지난해 4월 남중국해에서 진행된 사상 최대규모의 해상열병식(관함식)에서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중심에 둔 중국 함대가 무력을 과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 지난 2017년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5-죽은 자는 말이 없다’에 흥미로운 대사 한 구절이 나온다. 영국해군 함장이 해적선에 포격을 가하기 직전 “모든 바다는 대영제국이 지배한다”고 중얼거리는 말이다. 영화의 배경은 대략 18세기 카리브해로 추정된다. 당시 북·남미 사이의 카리브해 제해권은 영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가 설립되기 전의 이야기다.

영화 속 함장의 장담과는 달리 이후 미국이 급팽창하면서 카리브해가 먼저 영국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고 이후 전 세계 제해권도 미국에 넘어갔다. 현재 카리브해가 미국의 앞마당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중국인들이 카리브해를 남중국해와 비교한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중국은 쿠바가 아니며 남중국해는 카리브해도, 미국의 앞마당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카리브해가 미국의 영역이라면 남중국해는 중국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다음으로 두 강대국이 맞붙는 것은 군사 분야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그 무대는 남중국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패권경쟁에 앞서 남중국해를 차지하기 위한 총공세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기존 해양 패권국인 미국이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수비력을 총동원하고 있는 곳이 남중국해다. 무역전쟁이 경제 분야의 기존 글로벌 시스템을 미국 쪽에서 깬 것이라면 남중국해에서는 중국이 기존 패권구도에 도전하는 양상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 오사카에서 무역 담판을 벌이고 있던 지난달 29일부터 중국은 파라셀군도(중국명 시사군도)와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사이 해역을 항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이는 지난달 중순 미국이 항공모함까지 동원해 일본과 남중국해에서 연합 해상훈련을 한 데 대한 대항조치 성격이 짙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가시화한 것은 지난 2001년 4월이다. 당시 발생한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 사고를 계기로 양국의 대립 구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남중국해를 정찰하는 미국 정찰기에 중국 전투기가 따라 붙어 위협비행을 하다 서로 피하지 못하고 부딪혀서 발생한 이 사고는 이후 미중 양국의 안보 및 남중국해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은 중국의 도발이라며 ‘중국위협론’으로 들끓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중국해에서의 군사력 확대요구도 커졌다. 다만 마침 그해 9월에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가 발생하면서 이후 미국의 관심은 중동으로 옮겨갔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국이 대테러전에 힘을 빼는 사이 중국은 조용해 남중국해에서 군사력을 강화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 됐다. 다시 남중국해로 돌아온 미국이 동맹국들을 끌어들여 ‘항행의 자유’라는 작전을 펼치는 이유다. 이미 호주나 일본·인도 등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한국 역시 남중국해에서의 미중 패권대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지난달 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남중국해에 한국 군함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참여해달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단 북한의 위협에 국방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미중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의 상황은 난감하기만 하다. 지난해 9월에는 소말리아 해역에서 귀환하던 문무대왕함이 남중국해를 지나다 태풍을 피하려고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파라셀군도 영해로 들어간 것을 두고 중국이 ‘고의가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다.

오리아나 마스트로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항행의 자유’ 작전은 상징적인 무력 과시를 넘어서야 한다”며 “뜻을 같이하는 나라들과 새로운 기구나 협력체를 만들고 모든 나라의 ‘항행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중국해 분쟁에는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 간 영유권 분쟁과 미중 패권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영유권 분쟁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미국이 동남아 국가 편에서 서서 중국의 팽창을 가로막는 상황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남중국해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에 둘러싸인 거대한 바다다. 해역 면적만 300만㎢나 된다. 주변 국가는 중국을 비롯, 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베트남 등 5개국이다. 남중국해에는 크게 4개의 군도가 있는데 북쪽부터 프라타스군도(중국명 둥사군도), 파라셀군도, 메이클즈필드뱅크(중국명 중사군도), 스프래틀리군도 등이다. 이 중에서 플라타스군도와 메이클즈필드뱅크는 중국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데다 암초뿐이어서 분쟁이 심하지 않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남쪽에 있는 파라셀군도와 스프래틀리군도다. 파라셀군도는 중국과 베트남이, 스프래틀리군도는 중국과 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이 각각 일부 섬들을 점령하고 대치하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역사는 오래됐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시대가 끝난 후 독립한 각국은 경계가 애매모호한 바다를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남중국해 쟁탈전이 치열해진 것은 1968년 이 지역에 다량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면서부터다. 남중국해는 또 풍부한 어장이기도 하다.

영유권을 둘러싼 각축전에 동원된 것은 역사적 연고권과 무력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전체가 옛날부터 중국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주장은 15세기 명나라 시기에 진행됐던 정화의 동남아시아 원정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중국해를 아우르는 ‘U자’ 모양의 ‘9단선’을 긋고 전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은 점령한 섬들에 인공시설을 대대적으로 설치하고 미사일기지·활주로 등을 구축하며 군사기지화하고 있다. 사실상 영토화 작업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에는 시 주석이 직접 나서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해 “(중국의 핵심이익인 만큼)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 같은 주장에는 집권 후 노골적인 친중적 행동을 보여온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조차 “중국 논리대로 남중국해가 모두 중국 영토라고 한다면 미국은 태평양의 3분의1이 자기 바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비난했을 정도다. 필리핀은 앞서 2012년 자신이 영유권을 주장하던 메이클즈필드뱅크의 스카버러암초(중국명 황옌다오)를 중국에 무력으로 빼앗긴 바 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점령하고 있는 영토는 없다. 그 때문에 당초 영토분쟁에 미국이 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분쟁은 곧 중국과 미국의 분쟁이 된다.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에 밀리는 동남아 국가들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고 베트남도 미·베트남 국교정상화 이후 미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이 나서 중국 팽창에 대해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개입하는 결정적 이유는 미국의 제해권에 중국이 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사실상 전 세계 바다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는 남중국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이미 필리핀 등 동남아 각지에 군사기지를 두고 해역을 순찰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다양한 민족과 국가가 뒤엉킨 남중국해가 안정을 유지해 왔다.

미국이 남중국해 패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 군함의 이 해역 순찰을 확대한 가운데 지난해 11월 순양함 챈슬러즈빌호가 홍콩항에 정박중이다. /블룸버그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미국을 해역 밖으로 밀어내는 것에서 시작됐다. 자신들이 지배하는 도서를 기준으로 12해리(약 22㎞) 영해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에서 미국 함정과 항공기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이에 반발하면서 이름 붙인 것이 이른바 ‘항행의 자유’ 작전이다.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르면 특정 국가의 영해라도 해당국에 통보할 필요 없이 타국의 군함과 항공기가 자유 통행할 수 있으며 배타적경제수역에서는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국내법으로 이를 통제할 수 있으며 영해를 지나는 외국 군함은 중국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미국에 유리하지만은 않다. 중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군사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남중국해 남단까지 내려와 대대적인 해상 군사훈련을 펼치고 있다. 점령한 섬들을 군사기지화하면서 영유권을 착실히 다지는 중이다. 또 영토분쟁에서 적이었던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국가들도 차이나머니로 유혹해 친중국으로 돌리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남중국해의 패권을 위해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나 어선들을 동원하는 ‘회색지대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미국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남중국해를 사이에 둔 미중 패권경쟁은 앞으로 점차 심화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기지화는 지나치다”면서 “중국의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이에 대해 “미국은 주권 보호와 영토보존 문제에 관해 중국군의 능력과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 바 있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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