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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탈취땐 피해액 3배 배상...'솜방망이 처벌' 사라진다

[특허침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9일 시행]

특허 침해자에 입증 책임 부과...침해행위 직접 설명해야

영업비밀 범위 넓어지고 징역형도 5년→10년으로 강화

거래상 지위 우월한 경우 감안 징벌 대상도 적용하기로





절전기를 제조해 판매하는 A사는 세라믹의 원재료와 배합비율을 영업비밀로 관리해왔다. 이 기술은 특허도 받았다. 그런데 전무로 있던 김영민(가명)씨와 기술이사로 근무했던 박지민(가명)씨가 별도의 회사를 차린 후 A사의 영업비밀을 이용해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심지어 A사가 독점적으로 거래했던 거래처에까지 접근해 제품을 납품했다. A사는 이로 인해 2억9,500만원의 피해를 봤다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청구액의 6.8%에 불과한 2,000만원만 인정했다. 이 회사의 정민호(가명) 대표는 “법원은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했지만, 우리 회사 매출액 감소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우리 영업비밀을 이용해 그들이 얼마나 이익을 봤는지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9일부터 시행되는 특허권과 영업비밀 고의적 침해 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면 A사는 배상금의 세 배인 6,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그동안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낮은 손해배상액 탓에 근절되지 않은 특허 침해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징벌적 손배제가 시행된 후 가장 기대되는 효과는 기술탈취 근절이다. 구영민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 과장은 “그동안 특허 침해시 손해배상액이 많지 않았다”며 “특허 침해가 예상되더라도 우선 이를 통해 이익을 얻고 사후에 보장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지적했다.

현행 제도로도 특허권 침해를 받은 피해자는 법원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 문제는 손해배상금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특허권 침해 손해배상액 평균값은 6,000만원선이다. 이는 미국(65억7,000만원)의 9분의1 수준이다. 영업비밀 관련 민사소송은 매년 200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특허권 침해 소송에 나서더라도 피해기업이 이길 확률은 낮다. 2006~2012년 특허법 위반 사건에 대한 기소율은 5.1%로 일반 형사범죄(2012년)의 기소율 40.6%를 현저하게 밑돈다. 특허법 위반 유죄율도 46.3%로 일반 형사범죄의 절반에 그쳤다.

이 때문에 징벌적 손배제를 통해 기술탈취를 근절해야 한다는 요구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제기됐다. 피해기업의 최후 구제수단인 소송 통계에서 아우르지 못하는 기술유출 피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 규모는 최근 5년간 5,410억원에 달한다.



특히 중소기업 대부분은 대기업과 하청 구조로 얽혀 있기 때문에 소송에 나서지도 못하고 있다. 소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럽고 거래관계 기업의 보복이 두려워 감내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술탈취 분야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가 기술탈취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8월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의 기술탈취 대책 중 가장 효과가 높은 정책으로 ‘과징금 상향, 징벌적 손배제 등 처벌강화’라고 응답한 비율이 44.7%로 가장 많았다. 기술탈취 근절을 위한 선결 과제로는 ‘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과 법원의 적극적 판결’이 49.9%로 1위였다.

9일부터는 징벌적 손배제 도입뿐만 아니라 특허권과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제도도 함께 시행된다. 우선 특허권 침해 소송의 중요 기준인 실시료(라이선스 비용)가 ‘합리적 실시료’로 변경된다. 이에 따라 법원은 동종업계의 실시료 비율이 없더라도 판단할 수 있는 재량권을 얻었다. 특허 침해 입증의 책임을 침해자로 옮긴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통상 특허 침해는 침해자의 공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제조가 이뤄지는지 등을 입증하기 어려웠다. 앞으로는 침해자가 제조방식을 설명하도록 의무 규정이 생긴다.

중소기업이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업비밀의 범위도 넓어진다. 그동안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의 인정요건에는 ‘합리적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라는 단서조건이 붙었다. 이 때문에 영업비밀로 인정받지 못해 소송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허청은 이런 상황 탓에 발생한 소송 패소율을 약 50%로 추정한다. 앞으로는 ‘비밀로 관리’로 바뀌게 돼 기업이 영업비밀을 유지하기 쉬워진다. 징역형은 국내의 경우 5년에서 10년으로, 벌금 상한액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되는 등 형사처분도 강화됐다.

징벌적 손배제는 손해배상금이 최대 세 배로 정해졌지만, 국내에서는 평균 두 배선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특허청은 추정한다. 이 범위는 제도를 도입한 대만(세 배 이내)과 미국(세 배 이내)의 평균 수준이다. 관심 사안인 징벌적 손배제가 적용되는 첫 사례는 이르면 연내 나올 수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9일 제도 도입에 맞춰 소송에 나서겠다는 기업이 적지 않은 분위기”라며 “특허 소송 기간을 고려했을 때 1심 판결은 이르면 올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징벌적 손배제가 남발되거나 중소기업이 가해기업으로 몰려 도입 취지와 달리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제도는 경제적이나 거래상 지위가 우월한 경우를 고려해 징벌대상을 적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목성호 특허청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징벌배상이 시행되면 지식재산 침해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지식재산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는 환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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