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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국경제, 정책 전환없으면 환란 때보다 더 큰 위기 맞을 수도"

정운찬 전 국무총리

'소주성'은 취약계층 배려 성격 강한 인권 정책에 가까워

저임금 근로자 소득 올리면 경제 좋아진다는 기대는 순진

대-중기 동반성장 최우선 하는 투자 주도 정책이 대안

최저임금, 소비자물가 상승률 정도로 속도조절 바람직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5일 야구회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정책 전환이 없으면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뒤 동반성장을 통한 투자주도 성장 정책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권욱 기자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여러 직함을 거치면서 ‘영원한 청년’처럼 쉼 없이 달려왔다. 서울대 총장과 총리를 지낸 데 이어 현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등을 맡고 있다. 정 전 총리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학 분야의 석학이라는 점일 것이다. 다들 “경제가 어려워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요즘 정 전 총리를 만나 깊이 있는 진단과 처방을 들어봤다. 보수 정권에서 총리로 일했지만 경제 분야에서는 개혁 성향을 보여온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박한 점수를 줬다. 그는 “정책 전환 없이 그대로 가면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2010년 총리에서 물러난 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총리를 그만두면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자고 건의했다.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동반성장 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 1년 반가량 일하다가 그만뒀다. 그러나 저를 중·고교에 보내 학비를 지원해주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주셨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영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별세한 의학자·선교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나에게 대학에서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공부를 하고 평생 사회의 각종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2012년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 포럼을 개최하고 특강을 하면서 동반성장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또 지난해 초부터는 KBO 총재를 맡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과 교수로 지내는 동안 진보 성향의 변형윤 전 교수와 나중에 서울시장을 지낸 조순 전 교수로부터 어떤 점들을 배웠는가.

△변 교수님은 ‘숫자에 속지 말라’ ‘활자의 마술에 속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숫자는 통계, 활자는 신문 등을 뜻한다. ‘정부가 잘할 때는 가만히 있으면 되고 잘못할 때는 맘껏 비판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동서고금의 학문에 두루 밝으신 조 교수님은 오늘날 저를 있게 해주신 분이다. 미국에 유학 가도록 추천해주셨고 나의 결혼을 반대했던 장인을 만나 설득해주셨다. 내가 서울대 교수로 채용될 때도 도와주셨다. 조 교수님은 늘 ‘사회에 봉사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말하면서 실용주의도 가르쳐주셨다.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헌법 34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다. 최저임금 선상에 있는 서민들의 소득이 부족하므로 최저임금을 올려 사람답게 살게 하려는 취지에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나왔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경기를 살리고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소득주도 성장 정책으로는 부족하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더라도 자영업자와 중소 상공인들이 근로자들을 해고하면 오히려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또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가 1,500조원을 넘기 때문에 소득이 늘어도 소비가 증가하기가 쉽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기대하는 ‘소득 증가→소비 증가→투자 증가’의 선순환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해 ‘인권 정책’에 가깝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경제 정책이 아니라 인권 정책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취약 계층에 대한 인도적 배려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올리면 소비도 증가하면서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경제 정책은 선의만 갖고는 성공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계를 드러냈고 남미의 포퓰리즘 정책도 실패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도 우리의 모델로는 적합하지 않다. 복지국가 모델이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데다 북유럽 국가의 인구가 500만~1,000만명에 불과해 한국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 1·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4%로 10년 만에 최저점을 찍었다. 성장률을 높이고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어떻게 정책을 바꿔야 하는가.

△경제가 잘되려면 투자·소비·수출이 활발해야 한다. 수출은 외국과 관련된 것이므로 우선 투자와 소비 활성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비를 늘리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추진했는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투자를 늘리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오랫동안 대기업은 돈은 많은데 첨단 기술 부족으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투자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투자하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 이제는 대기업으로 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흐르도록 유도해 투자를 늘리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투자와 소비가 함께 커가는 동반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투자주도 성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동반성장을 통한 투자주도 성장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는데 동반성장에 대해 설명해달라.

△동반성장은 기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과실을 공유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중소기업 간뿐 아니라 빈부 간, 지역 간, 도농 간, 세대 간 동반 성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혁파하고 한 배를 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기 위해 성과를 나눠 갖는 ‘이익공유제’를 도입해야 한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해 ‘중소기업 적합 업종’ 선정의 확산도 필요하다. 공공 부문이 중소기업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경제 전체의 수요가 살아나고 투자 증대와 소득 증가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 경제는 저성장·저투자·수출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현재 한국 경제는 어느 정도 어려운가.

△공급 측면의 구조 개혁 관점에서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재벌들은 부실 회사들을 정리하고 재무 건전성을 개선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 전후에는 이렇다 할 구조조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 뒤 주력 산업의 경쟁력 저하 현상이 나타났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미국 경제의 호황이 있었고 금융위기 당시에는 중국의 대대적인 경기부양 정책 효과가 우리 경제를 살렸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수입대체를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자국 우선의 무역 정책으로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도 만만치 않다. 경제 정책을 조속히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1997년, 2008년보다 훨씬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 1호로 일자리 창출을 내세웠지만 요즘 늘어나는 일자리는 주로 노인들의 공공 일자리와 단기 아르바이트이고 제조업과 3040세대 고용은 크게 줄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하는 곳에서 음식·숙박·도소매업 일자리도 크게 줄고 있다. 결국 제조업 고용 감소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제조 중소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년 동안 최저임금을 29.1% 급속히 인상한 것이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줬는데 내년 최저임금은 어느 수준이 되는 게 적절한가.

△올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과 거의 같아졌다. 이제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0.7% 상승) 정도로 최저임금 인상률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전체 평균임금의 일정 비율을 최저임금으로 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과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정 기간에 일이 집중되는 업종의 경우 주간 단위로 노동시간을 산정하기보다는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또 계층 상승을 원해 자발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려는 사람들은 일을 더할 수 있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 누가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지만 ‘돈 없는 저녁’이 돼서는 안 된다.

-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 건설한 4대강 보 가운데 일부를 철거하려 하고 있다. 공주보처럼 다수의 주민이 보 철거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한반도 대운하’는 반대했지만 강을 아름답게 하고 홍수·가뭄을 조절하기 위한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다수의 주민이 반대하는데 보를 철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가 했으니 틀렸고 누가 했으니 맞다는 식으로 정권에 따라 다른 접근을 하면 경제도 국민들의 삶도 좋아질 수 없다.

-평소 역설해온 ‘국격 제고’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총선이나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동반성장과 국민에게 힐링을 주는 스포츠를 통해 국격이 높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선거에 출마해서 특정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충분한 보람이 있을 것이다. 어떤 자리에 앉느냐보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영입을 제의하면 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저는 정치에 잘 안 맞는 것 같다.(웃음)

-‘야구 예찬’이라는 책을 쓰고 KBO 총재를 맡을 정도로 야구광으로 알려져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야구를 접한 뒤 대학 때까지 거의 매주 동네 야구를 했다. 미국 유학 중에는 TV로 야구를 자주 보느라 학위 받는 것도 늦어졌다. ‘야구 바보’로 불리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구는 인생사 새옹지마와 너무 닮았다. 9회 말 투아웃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야구 아닌가.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

He is…

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했으나 아버지를 여읜 뒤 중학교 졸업 때까지는 생활이 어려워 점심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경기중·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이어 총리를 역임한 뒤 현재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와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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