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입니다. 비록 감정이 격앙되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때문에 애정의 유대가 끊겨서는 안 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1861년 3월 취임사에서 노예 해방을 둘러싼 대립을 끝내자면서 절절하게 ‘친구유대론’을 폈다. 링컨은 전쟁으로 분열된 남북을 통합하는 데 성공해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4선 대통령 기록을 가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기 취임사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고 외쳤다. 그는 대공황으로 절망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부흥시켰다.
취임사에서 국민이 공감하는 비전을 내놓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지도자들은 나라를 구하고 역사의 영웅이 됐다. 반면 상당수 대통령과 총리들은 취임사에서 외친 메시지를 실천하기는커녕 거꾸로 가는 행태를 보여 실패한 지도자로 기록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명(名)취임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임기 내내 ‘취임사의 역풍’에 시달렸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대목은 취임사의 백미로 꼽혔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이 터지면서 ‘평등·공정·정의’는 정권의 급소를 찌르는 창이 됐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인사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로 흘렀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이라고 역설했으나 실제 국정 운영은 ‘국론의 분단’으로 귀결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차례나 꺼내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면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건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자유의 가치와 지성주의 궤도에서 일탈한 반헌법적 행태였다. 두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모두 취임사와 달리 ‘용두사미(龍頭蛇尾)’로 흘렀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취임사대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 요즘 유행어대로 처음도 장대하고 끝까지 좋은 ‘용두용미(龍頭龍尾)’가 돼야 할 것이다.
‘국민’과 ‘실용’ ‘통합’ ‘성장’을 내세운 이 대통령의 취임 연설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4일 취임하면서 ‘정의로운 통합정부’와 ‘모두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소통과 대화를 복원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정치를 되살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되겠다면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고 했다. 또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에 대한 일부의 의구심을 의식한 듯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아쉬운 대목은 ‘국가 재정을 마중물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 등 일부 구절이다. 나랏돈 지원 확대에 몰입하면 선심 정책과 모럴해저드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어서다.
이재명 정부와 거대 여당의 최근 움직임을 지켜본 국민들은 취임 연설의 키워드인 ‘실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이 복합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하려면 새 정부가 네 가지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첫째는 재정 주도 성장 추진 등 경제 포퓰리즘이다. 둘째,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남북 대화 이벤트에 매달리는 외교안보 포퓰리즘으로 안보 불안을 초래하는 것이다. 셋째, 입법권·행정권을 장악한 데 이어 사법권까지 흔드는 삼권분립 훼손이다. 넷째, 국민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정책과 인사(人事)다.
이런 지적이 기우로 끝나게 하려면 이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밝힌 대로 초심을 지키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찍지 않은 유권자가 절반에 이른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고 ‘모두의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퇴임 직전 지지율은 70%를 넘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취임할 때보다 떠날 때 더 큰 박수를 받는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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