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부터 대학교수들의 노동조합 구성이 합법화되면서 교수 노조가 대학과 법인·학생 등 대학 사회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8월 교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교원을 초중등교육법상 교원으로 한정한 해당 법 조항이 헌법을 위배한다고 판시함에 따라 ‘교수노조 합법화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헌재가 명시한 기한인 내년 3월 말까지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어떻게 도출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수 있어 ‘태풍의 눈’이 될지 ‘찻잔 속 태풍’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대학 구조조정과 종합감사, 학교 수익재산 과세 전환 등 대학을 둘러싼 숱한 이슈 가운데 교수노조 합법화는 단연 대학가의 주요 화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법원에 위헌심판을 제청해 헌재 결정을 이끌어낸 민주노총 산하 ‘전국교수노동조합’ 외에도 최근 전국 140개 사립대학의 교수협의회장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중앙대·이화여대 등 서울 9개 주요 대학을 회원으로 둔 서울소재대학교수연합회(서교련)가 ‘대학교수노동조합(가칭)’을 공동출범시키기로 하는 등 복수 교수 노조의 등장이 본격화하고 있다.
교수 노조들의 관심은 내년 3월 말까지 나오게 될 교원노조법 개정안에서 합법화된 교수 노조에 단체행동권이 보장될지 여부다. 초중고 교원에 적용되는 현 교원노조법에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보장되지만 단체행동권은 제한돼 파업 등 쟁의는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교수 노조들은 교수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한 행정법원 판례가 존재하는 점 등을 들어 개정안에 단체행동권이 반영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개별 대학교수의 정치 참여가 이미 가능한 점을 고려한 교수노조의 정치 참여, 시도 단위가 아닌 개별 대학 단위의 노조 가입, 수업 외 연구 비중이 상당한 교수직의 특성을 감안해 노조 전임의 휴직 대신 근로시간 감면을 추진하는 방안 등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본격화하는 오는 11월 이후에는 국회의 개정안 발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내년에는 ‘총선 국회’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돼 교수 노조들은 올 9~10월이 법 개정을 위한 마지노선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회가 사실상 파업상태인 가운데 헌재 판결 이후 교원노조법 개정안 발의 건수도 단 2건에 그치는 등 법 개정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일 내년 3월 말까지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교원노조법 적용 교원을 명시한 위헌 조항인 교원노조법 제2조는 유효성을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교수노조는 합법화되지만 단체행동권이나 정치 참여 등은 배제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방효원 대학교수노조 주비위원장(중앙대 교수)은 “단체행동권은 노조의 마지막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정안 포함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며 “개정안 성사에 못 미칠 경우 위헌신청 등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권익 전국교수노조 사무처장(동덕여대 교수)은 “헌재가 법 개정까지 명시했다는 점에서 개정안이 나오지 못한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이 경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기에 교원노조법이 아닌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노조로서 단체행동을 포함한 다각도의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령 단체행동권을 확보하지 못한다 해도 합법화된 교수 노조의 등장은 대학가에 변화의 물꼬를 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국교수노조는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와 손잡고 국립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간섭 최소화와 사립학교의 지배구조 개선 등에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전국 140개 사립대학의 교수협의회장을 회원으로 둔 사교련도 새 노조인 대학교수노조 결성을 주도하고 있어 상당한 파급력을 예고한다. 대학교수노조는 개정안 도출에 못 미칠 경우 내년 4월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이 모인 서교련을 시작으로 시도 단위의 노조 결성에 나설 계획이다. 노조들이 사립학교법, 비정년계열 교수 급증 등과 같은 대학 현실과 사학비리의 중심축인 학교법인 등을 향해 단결된 목소리를 내며 대학과 부처를 압박할 경우 대학사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게 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현 사립대학 구조에서 법인에 강경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은 없는 상황”이라며 “복수 교수노조의 등장으로 대학 구조조정 국면의 혼란이 더 커질 수도 있겠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이끌어낼 합리성을 확보한다면 교육계에 상당한 파급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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