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추가 관세폭탄을 예고하며 무역전쟁을 확전으로 끌고 간 미국이 일본·유럽연합(EU)과의 무역협상에서는 눈에 띄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타격을 입는 미 농가와 경제계에 또 다른 무역협상의 성과로 어필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갈등 장기화로 급기야 미국의 최대 교역국 지위를 4년 만에 빼앗기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일 소식통을 인용해 이달 1~2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에서 만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경제재생상이 다음 달까지 큰 틀의 무역합의를 도출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미일 양국은 다음 달 하순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 맞춰 미일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문은 이달 하순 프랑스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만큼 이 자리에서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자동차와 쇠고기 관세 축소·철폐를 둘러싼 의견 대립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신문은 양측이 이달 중 각료급(장관급) 회의를 재개해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38.5%의 쇠고기 관세 인하를 포함해 일본에 농산물 시장 조기 개방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에 속도를 내는 데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농·축산업 종사자들의 표심을 얻으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 마찰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과의 합의는 미 농가에 어필할 수 있는 소재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미국산 쇠고기의 EU 수출을 확대하는 내용의 합의문에 최종 서명하면서 대서양 무역시장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은 쇠고기 수입 쿼터 4만5,000톤 가운데 3만5,000톤(약 80%)은 미국산에 할당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축산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번 합의는 미국 축산농가와 유럽 소비자 모두에게 엄청난 승리”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유럽이 미국 정보기술(IT) 공룡들에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하고 미국은 프랑스산 와인에 보복 관세를 경고하는 등 양국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자동차 관세 등을 둘러싼 양측의 무역갈등이 다소 진정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미중 무역전쟁이 확전 국면으로 접어들며 장기화한 결과 중국은 4년 만에 미국의 최대 교역국 자리를 빼앗겼다. 이날 미 상무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 전체 교역에서 멕시코가 15%를 차지하며 최대 교역국 지위로 올라선 반면, 중국은 13.2%에 그쳐 3위로 밀려났다. 2위는 14.9%를 기록한 캐나다다. 중국이 미국의 무역파트너 1위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무역협상 타결을 미룰 수록 미국에 유리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타격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 시카고비즈니스는 무역전쟁으로 장미국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대두에 이어 에탄올 업계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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