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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적폐청산 짐 짊어진 우리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도덕없는 사람이 법무장관 되고

개혁 빌미로 또다른 독재적 행태

각자 자리서 민주화투쟁 벌일때





주변에서 이야기한다. 조국 교수는 딸을 위한 인맥동원의 끝판왕이었고 불공정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당신도 잘나가는 로스쿨 교수라며 도대체 딸을 위해 한 것이 뭐냐고. 그러고 보니 난 딸에게 몇번 법률 공부를 도와주고 꾸짖은 것밖에 한 게 없다. 자랑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딸이 원하지 않았지만, 인턴십 부탁도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성사될 텐데 참고 참았던 기억들. 그동안 내가 관여했던 국제학술행사에서 인턴 학생을 고용했던 적도 수십번이다. 딸이 마침 수강하던 과목의 담당 교수를 우연히 만났을 때 자식들이 어디 다니느냐고 묻기에 적당히 얼버무렸던 기억도 급습한다. 한국사회에서 원칙주의자로 사는 것이 허탈할 때가 많은데 요즘은 오히려 위안이 된다. 난 적어도 어린 학생들의 공정경쟁을 해치며 살진 않았다는. 그리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게 교수라는 직업이다.’

불법 행위를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소속된 직업에서 최소한의 직업윤리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법무행정 개혁의 최적임자라는 말 한마디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만천하에 드러낸 불공정 민낯을 들고서 길어야 2년의 임기 동안 얼마나 칼바람을 일으키며 적폐를 청산해나갈지 모르겠다. 얼마 전 만난 법조인 이야기가 생각난다. 본인은 지난 정권에서 우연히 주어진 사건을 맡아 법대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의사결정권이 없는 실무자리였기에 성실히 소임을 다한 것이 전부인데, 정권이 바뀌더니 갑자기 적폐청산 대상이 돼 전체 조직을 찍어 내린단다. 한직으로 돌려 창피 주기를 반복하니, 같이 일했던 대부분의 동료들은 젊은 나이에 벌써 조직을 떠났지만, 본인은 너무 억울해서 아직 버티며 정신과 치료까지 병행하고 있단다. 자신이 평생 믿어왔던 직업적 소명의식,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지금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 분명하다. 이런 유사한 사례가 여기저기에서 수시로 들린다. 적폐청산을 빌미로 마구잡이로 벌이는 개혁의 본질이 또 다른 인사 적폐를 위한 자리 만들기로 전락하는 것 같다. 권력기관이 그럴진대 힘없는 기관은 어떨까. 겉으로 내세우는 적폐청산의 정의가 속에 감춰둔 정치 망나니 칼날의 빛을 얼마나 감출 수 있을까. 결국 누가 권력을 더 잡느냐는 권력투쟁의 과정인데 이를 굳이 적폐청산이라 미화하며 수많은 민초들에게 허탈감까지 안겨줄 필요가 있나. 정의·공정·평등을 내세운 촛불혁명의 가치조차 권력투쟁의 민낯 앞에 속수무책이다. 법치행정의 총수가 자신 또는 가족과 관련된 사건들을 뒤치다꺼리하느라 보낼 2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인재가 공직을 떠나거나 정신병원 신세를 질지 두렵기까지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의 가치를 더 이상 들먹일 자격이 없고 박근혜 정권을 적폐라 부를 근거가 없다”는 한 정치인의 한마디 논평에 동의한다.



그 법조인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지금 적는다. 지금은 너나 나나 때아닌 민주화투쟁을 벌이는 시대라고. 과거 독재정권에서 시끌벅적하게 벌인 민주화투쟁도 가치 있겠지만, 이를 훈장 삼아 또 다른 독재적 행태를 모두 합리화시키는 자들에 맞서 개개의 민초가 벌이는 삶의 투쟁이 아닌가. 각자가 겪는 권력형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소신껏 소임을 다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치가 수시로 망쳐놓는 외교·경제·민생을 책임지는 민주투사가 돼서 말이다. 오늘은 현 정권이 일본 때리기로 외교관계를 얼마나 망쳐놓고 있는지부터 정확한 팩트체크를 통해 학생들에게 강의하려 한다. 모두 잘 버티기를 바라고 이름 없는 레지스탕스가 돼 각자의 영역에서 더 쌓이는 적폐청산 작업에 임하리라 믿는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는커녕 최고 권력자와 맞서는 일인데도 ‘그게 교수라는 직업이다’라며 양심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양대 총장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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