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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선릉의 야외뮤지컬과 문화재의 활용

정재숙 문화재청장





“선릉 정자각에서 성종(成宗) 임금 뮤지컬이라니~. 지극히 유교적인 곳에서 현대적인 이벤트다. 무용수, 배우들은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불편했겠는데 관객에게 정자각은 멋진 무대였다.”

블로그 ‘초코 라임 딸기’에 올라온 공연 체험의 한 대목이다. ‘2019 강남페스티벌’의 ‘BIG 10’ 중 하나로 꼽힌 ‘성종, 왕의 노래-악학궤범’을 아이들과 감상한 블로거는 흔쾌한 듯 한마디 했다. “선릉, 성종, 경국대전, 악학궤범. 외우지 않아도 국사 알기가 되겠는데 ㅎㅎ.”

3일과 4일 저녁7시 서울 삼성동 선정릉 내 선릉 정자각 일대에서 펼쳐진 ‘성종, 왕의 노래 악학궤범’(이하 성종)은 여러 가지로 모험 가득한 시도였다. 조선을 통치한 왕과 비가 영면하고 있는 능에서 ‘웬 뮤지컬?’이라는 우려가 컸다. 전주이씨 종친회는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보냈다. 한번 망가지면 되돌릴 수 없는 문화유산에 대한 걱정의 소리도 높았다. 궁능활용심의위원회 위원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조선왕릉 최초의 야외뮤지컬이 탄생하는 데는 이렇게 많은 난관이 있었다.



태풍 미탁이 지나간 청명한 하늘 아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막을 올린 ‘성종’은 고생한 보람을 느끼게 한 쾌작이었다. 500여석 자리를 꽉 채운 주민들은 박수치고 환호하며 능의 가을밤에 펼쳐진 역사의 향연을 즐겼다. 붉은 정자각(丁字閣)은 오로지 조명 하나로 훌륭한 무대가 돼 잠들어 있는 조선의 제9대 국왕 성종(1457~1494)의 넋을 불러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악학궤범(樂學軌範)’을 두 축으로 법과 음악의 예악정치를 펼친 성종의 모습이 봉분에서 살아 돌아온 듯 실감이 났다. 이석우 ‘성종대왕 종친회’ 회장은 “25년 재위 기간 중 8,800여회 경연을 하신 성종의 뜻이 이곳 강남의 교육문화도시와 잘 맞아떨어졌다”며 느꺼워 했다. 문화유산 영역에서도 상황과 장소에 맞게 발명이나 창안이 필요함을 절감한 밤이었다.

2009년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열 돌을 맞는 올해, 선정릉의 변신은 일깨워주는 점이 많다. 10년 전 9월, 현지 실사를 나온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전문가는 강남 빌딩 숲에 둘러싸인 능의 위치에 대해 걱정하는 한국 위원들에게 오히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지역 한복판에 이런 천혜의 푸른 숲을 보존했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왕릉은 말하자면 지혜로운 선조가 천 년 앞을 내다보고 마련해준 그린벨트였던 셈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구리 동구릉 내 경릉~양묘장 1.5km 숲길을 비롯해 조선왕릉 8곳 숲길을 1일부터 31일까지 한시 개방한다. 올봄 일시개방 때 방문객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80%가 숲길 개방에 찬성했고 휴식과 치유를 방문 이유로 들었다. 사람 숨길이 차단된 문화유산이 오히려 삭아 망가지고, 손때 묻은 문화재가 더 반들반들 수명이 길어지는 경우를 본다. 성종이 이미 갈파했듯 사람이 어우러지는 문화가 우리를 제대로 살게 한다. 활용이 보존의 한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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