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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만남 앞두고 ‘묵이식지’ 강조한 이낙연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日언론 인터뷰서 한일 인연 부각
文친서 들고 22~24일 일본 방문
정상외교 복원 위한 사전작업 성격
일본통 롯데 신동빈과 18일 면담

이낙연, 일본

아베 만남 앞두고 ‘묵이식지’ 강조한 이낙연
아사히신문 10월 18일자에 실린 이낙연 국무총리 인터뷰.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집무실에서 일본 아사히신문과 인터뷰 도중 검정 펜을 꺼내 하얀 종이 위에 고사성어 하나를 적었다. 묵이식지(默而識之).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고 통한다’는 뜻이다. 이 총리가 이 글을 일본 기자에게 직접 써서 보여준 이유는 뭘까.

이야기의 시작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은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와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기 명가가 된 심수관 가문이다. 사토 전 총리는 어느 날 14대 심수관의 거처를 직접 방문했고 붓과 벼루를 즉석에서 청한 후 ‘묵이식지’ 네 글자를 써서 건넸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사토 전 총리는 본인 역시 임진왜란 때 건너온 조선인의 후예라고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베 만남 앞두고 ‘묵이식지’ 강조한 이낙연
김종필 총리와 오부치 총리가 1998년 조선도공 14대 후손인 심수관씨 집과 전시실을 관람한 후 도자기에 글을 쓰고 있다./연합뉴스

日 정치 명문가 ‘아베 외가’-韓, 인연 부각

사토 전 총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친동생이다. 일본 최초이자 유일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 집안과 한국의 특별한 인연을 부각하는 동시에 평화를 위한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 이 총리가 인터뷰 도중 즉석에서 ‘묵이식지’에 얽힌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지난 7월 해외 순방 도중에도 기자들에게 심수관 후손의 집 접견실에 걸린 ‘묵이식지’ 액자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단행 되기 직전으로, 이 총리 대일특사설이 세간에 돌던 때였다.

하지만 이 총리 특사 카드는 사용되지 않았고, 청와대가 고위급 인사들을 일본에 비밀리에 보냈지만 한일 간에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일본은 수출 규제를 단행했고, 한국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맞불을 놓았다.

아베 만남 앞두고 ‘묵이식지’ 강조한 이낙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조금 늦게 도착한 이낙연 국무총리의 인사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이총리, 文 친서 전달…‘심부름꾼’ 역할

이 총리는 인터뷰에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작은 토대를 만들고 싶다. 대화를 통해 양국이 7월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심부름꾼’ 역할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 이 총리는 22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참석을 위해 일본에 가면 아베 총리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은 당면한 문제를 이번에 다 해결하기는 어렵더라도 임기 내에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한일 관계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면한 문제’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 수출규제 조치, 지소미아 종료 등 3대 난제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한일 갈등을 의미한다.

아베 만남 앞두고 ‘묵이식지’ 강조한 이낙연
지난 1월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 씨의 어머니 신윤찬 씨가 사고 현장을 찾아 두 손 모아 아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이 총리는 방일 기간 이씨 추모비를 찾을 예정이다./연합뉴스

아베 면담 외 현지 대학생·경제인도 만나

이 총리는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2박 3일간의 방일 일정도 양국 관계 개선의 작은 디딤돌을 여러 개 놓는 데 목적을 두고 진행하기로 했다. 18일 총리실에서 공개한 방일 일정표에 따르면 이 총리는 22일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해 같은 날 오후 도쿄 고쿄에서 열리는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과 저녁 궁정 연회에 참석한다. 다음날인 23일 저녁에는 아베 총리 내외가 주최하는 만찬에 초대받았고 24일 오전 아베 총리와 총리 관저에서 면담을 한다. 아베 총리의 일정이 워낙 꽉 차 있어 면담 시간은 ‘10분+α’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만, 문 대통령의 친서나 구두 메시지를 전하면서 정상 외교 복원 의사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만남 앞두고 ‘묵이식지’ 강조한 이낙연
1915A03 총리 방일 주요 일정

일본 왕실과 정부 측 공식 일정 외 이 총리의 독자 행보도 눈에 띈다.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에다노 유키오 입헌민주당 대표, 모리 요시로 전 총리 등 정계 유력 인사와의 면담은 물론 일본 경제인 초청 간담회도 진행한다. 한일 우호의 상징인 고 이수현 의인 추모비도 찾을 계획이다. 이씨는 2001년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승객을 구하다 숨졌고, 이후 양국 우호의 상징이 됐다.

이 총리는 미래 한일관계를 이끌어갈 젊은이들과의 ‘소프트 스킨십’을 위해 현지 대학도 방문한다. 대학생 20여 명과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대화하면서 한일 현안에 대한 일본 젊은 층의 생각을 직접 듣고, 한국의 입장을 들려줄 예정이다.

한편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총리 공관에서 재계 대표적 일본통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비공개 만찬을 했다. 1시간 반 가량 진행 된 만찬에서 이 총리는 신 회장으로부터 일본 재계 및 정계 분위기 등을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재계 유력 인사들 뿐 아니라 아베 총리를 비롯해 정계에도 촘촘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앞서 이 총리와 신 회장은 지난 5월 미국 루이지애나주 롯데케미칼 공장 준공식 참석 당시에도 마주 앉아 한일관계에 대한 의견을 서로 나눈 바 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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