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에 비친 또 다른 색(color)의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이런 작품은 요즘 인스타그래머(인스타그램 등 SNS를 적극 이용하는 사람)도 좋아하겠죠? 삼촌이 50년 전에 만든 작품이지만 지금도 정말 흥미로워요. 미래에는 모두 각자의 손안에 TV를 갖게 될 것이라던 삼촌의 말이 요즘 유튜브로 실현됐고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의 조카이자 저작권 상속자인 백건(69·미국명 켄 백 하쿠타)이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전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정식 개막에 앞서 만난 그는 백남준의 혁신성과 기발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국에서의 이해 부족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신을 제외하고 진행한 전시, 소장품 구입 및 관리 등을 문제 삼아 한국 미술계와 수년째 교류를 끊고 있지만 이날만큼은 유쾌했다.
그가 직접 시연까지 해 보인 작품은 백남준의 1969년 작 ‘3대의 참여 TV(Three Participation TV)’다. 3대의 폐쇄회로 카메라가 관람객을 비추고 그 모습이 빨강·노랑·초록 등 빛의 3원색 그림자로 치환돼 뒤쪽 스크린에 투사되는 이 작품은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양방향 소통을 가능케 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추상적 이미지는 현대적 감각을 뽐낸다. 백 씨는 “지금 이 미술관에서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광학을 이용해 공간을 장악하는 그의 작업이 떠오를 것”이라며 “그 젊은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 봐도 백남준은 정말 앞서 간 작가”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1963년작 ‘깡통자동차(Can Car)’를 가리키며 “어릴 적 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삼촌이 가져가서 이렇게 만들어놓았다”고 천진하게 웃었다. 두 개의 녹슨 기름통과 장난감 자동차 바퀴를 땜질해 이어 붙인 형태로, 작은 전기모터가 달려있어 지금도 회전하며 움직일 수 있는 ‘기계조각’이다. 이 작품은 음악가였던 백남준이 새로운 예술에 눈뜨던 초창기 작품이자 첫 번째 로봇 조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과 독일에서 유학한 백남준은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가기 전 1년 남짓 일본의 형, 즉 백건 씨 아버지 집에서 함께 지내며 초기 로봇과 기계조각을 고안했다.
백 씨는 “광적인 삼촌을 ‘미친 삼촌(Crazy uncle)’이라고도 했는데 왜 이런 작업을 하느냐 물으면 ‘아무도 안 했으니까’라고 답하더라”면서 “삼촌은 한국을 정말 사랑했고,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래서 2002년 월드컵 축구 때는 늘 한국팀만 열심히 응원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백남준이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이는 큐레이터들, 미술관과 정부 관계자들의 인식 문제라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백남준은 복잡한(complicated) 작가인 만큼 깊이 있는 연구와 이해가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세계 곳곳에서 빌려 온 226점의 작품으로 이뤄진 ‘백남준’전은 영국서 시작해 향후 2년간 네덜란드,미국,싱가포르 순회전으로 이어진다.
/글·사진(런던)=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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