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에 도착하기 전부터 마음은 우포늪으로 향했다. 창녕군의 아이콘이 돼버린 우포늪을 찾아 짙게 깔린 물안개 뒤로 퍼져가는 여명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야무진 꿈을 안고 새벽공기를 가르며 우포늪에 도착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차 밖으로 나서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늪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기자 혼자뿐이다.
사람들은 ‘늪’이라고 하면 진흙밭이나 펄을 상상하는데 아마도 이유는 어릴 적 봤던 외화 ‘타잔’에서 가끔 그런 늪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늪의 정의는 ‘수심 3m 이하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니 내륙의 웬만한 호수는 수심이 깊지 않다면 늪에 해당하는 셈이다.
‘타잔’에 나오던 아프리카 밀림 속의 늪과는 달리 내 기억 속의 우포늪은 물안개 퍼지는 아름다운 풍광이어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전망대에 도착할 욕심으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동쪽 산 너머로 여명이 붉게 물들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포늪은 탁 트인 시계에 공기까지 명징해 물안개가 올라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은 가을이라 철새의 군무는 구경할 수 없었다. 그저 먼 시베리아에서 날아왔다가 텃새로 주저앉은 청둥오리 몇 마리가 헤엄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사진을 몇 컷 찍고 전망대를 내려와 ‘생명길’ 동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둘레가 8.4㎞에 달하는 우포늪 생명길은 천천히 걸으면 세 시간쯤 걸리는데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이슬 먹은 새벽길을 걷는 기분은 상쾌했다.
늪을 돌고 나서 전화로 통화한 이현휴 해설사에게 “새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여름 철새는 우포늪에 와서 알을 부화해 어린 새끼를 키우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잘 안 띄는 반면 겨울 철새들은 시베리아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함께 날아오기 때문에 굳이 숨을 필요가 없어 사람 눈에 잘 띈다”고 말했다. 현재 계절은 겨울보다 여름에 가까우니 철새들이 눈에 안 띄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여름에 오는 철새들은 꾀꼬리·파랑새 같은 산새가 많고 겨울에는 쇠물닭·물꿩 같은 물새들이 많다”고 했다.
새벽 우포늪에서 기자를 맞아 준 새는 청둥오리·흰뺨검둥오리·중대백로·황로·왜가리 등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시베리아에서 날아와 이곳에 눌러앉아 텃새가 된 족속들이다.
하지만 우포늪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따오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5월22일, 부화에 성공한 40마리를 방사했는데 이 중 4마리가 폐사하고 36마리가 늪에서 서식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방사한 따오기의 생존율은 40~50% 정도인데 우포늪 따오기의 적응 여부는 올겨울을 지나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우포늪의 새 구경은 11월 말~12월이 제철인데 그중에서도 12월 초가 피크다. 이때쯤이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군무를 추는 모습이 무시로 펼쳐진다. 12월부터 2월까지 우포늪에서 어로작업을 금지하는 것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우포늪은 철새들의 댄스를 위한 무대공간일 뿐 아니라 250만5,000㎡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자연 내륙습지다. 우포늪을 만든 수원(水源)은 토평천으로 이 하천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감리 열왕산(해발 662.5m)에서 발원한다. 토평천은 창녕군 유어면 대대리에서 우포로 유입돼 ‘S’자로 동남진을 반복한 후 창녕군 유어면 구미리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렇게 형성된 늪의 규모는 가로 2.5㎞, 세로 1.6㎞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방면 옥천리와 유어면 세진리 사이에 제방을 쌓아 이 늪을 우포와 목포로 구분해 놓았다. 이제는 맏형격인 우포(127만8,000㎡)와 사지포(36만5,000㎡), 목포(53만㎡), 쪽지벌(14만㎡)과 복원습지 산밖벌(19만2,000㎡)로 나눠져 있다.
우포라는 이름은 늪의 지형이 소와 닮았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늪의 뒤편에 위치한 산이 우항산(牛項山)인데 이 부근의 지세가 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우항산은 소의 목 부위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해 우포늪이라고 부르게 됐다.
우포라는 이름이 기록에 남아 있는 것 중 제일 오래된 것은 도호 노주학의 문집 ‘화왕산유람기’다. 1810년께 집필된 책에는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봄옷이 당지어진 이 같은 좋은 때에 어찌 바람을 쐬고 돌아오지 아니하리오? 우포 소맥산(小麥山)을 지나 아래로 탄원(지금의 탐하) 안산에 다다라 꿩 6마리를 잡아 퇴천 주막에 들어가니 약속한 친구들이 이미 와 있었다”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포는 새들이 둥지를 틀기 적합한 습지였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이제 한두 달만 지나면 이 넓은 습지는 비상을 준비하는 겨울 철새들로 뒤덮일 것이다.
/글·사진(창녕)=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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