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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근사체험, 뇌의 착각인가 사후세계 열쇠인가

의학적 사망 판정 후 2~3분간

유체 이탈·터널 통과 등 경험

과학계 "죽음 공포에 시달리면

뇌의 뉴런 튕겨나가 환상 유발"

일각선 "환각 아닌 완결된 경험

기억할 정도의 의식 유지" 반박도





‘내 육체를 이탈해 공중에 떠 숨진 나와 주변 사람들을 바라봤다. 터널을 통과해 돌아가셨던 아버지를 만난 뒤 뒤로 빨려들며 깨어났다.’ ‘나선형 터널을 통과하며 내 삶에서 힘들고 행복했던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봤다. 자유롭고 아름다워 돌아오기 싫었다.’

네덜란드의 심장전문의인 핌 반 롬멜 박사가 지난 2001년 세계적 의학 학술지인 란셋에 발표한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s)에 관한 논문의 주요 사례다. 그는 1988~1992년 네덜란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가 다시 깨어난 344명을 대상으로 죽음의 순간을 기억하는 62명 중 근사체험을 한 41명을 소개했다. 이들은 자신의 죽음을 느꼈거나 긍정적 감정을 간직하고 유체이탈에 이어 터널을 통과하거나 죽은 사람과 만나고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식의 경험을 했다고 제각각 털어놓았다.

롬멜 박사는 “의학적으로 심장이 멈춰 호흡이 없고 동공반사나 뇌파가 없어 사망했다고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이런 기묘한 체험을 한다. 2~3분의 짧은 근사체험으로 인생이 바뀌게 된다”고 설명한다. 마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수전노인 스크루지 영감이 유령의 인도로 자신이 죽은 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것을 본 뒤 꿈에서 깨어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식이다.

앞서 1975년 미국 정신과 의사인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의 사후세계(Life after Life)라는 책에도 근사체험을 한 150명의 사례가 소개돼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10년 넘게 ‘죽음학’을 강의하고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라는 책도 쓴 정현채 전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심폐소생술이 도입된 1960년대부터 근사체험을 한 이들이 많이 나타났다”며 “요즘은 근사체험이나 임사체험을 넘어 죽음체험이라고 하기도 한다”고 밝힌다. 미국 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는 근사체험 등을 목격하며 “육체는 영혼 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불과해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사체험이 뇌의 작용으로 발생하는 착각이나 환상이라는 의과학계의 지적이 더 많다.



비행사처럼 저산소증에 시달리거나, 수술을 위해 마취제를 맞거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면 뇌의 뉴런들이 튕겨 나가기 시작하며 빛이 동반된 터널과 소용돌이 현상을 보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수전 블랙모어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데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는 것은 어리석다”고 주장한다.

쥐 실험을 통해 약물이 근사체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정상 쥐와 염화칼슘을 넣어 심장을 멈추게 한 쥐에 각각 전극을 꽂고 뇌파 실험(9마리)을 한 결과 심장이 멈추고 뇌파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에 감마파가 20~30초간 유지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각성과 명상처럼 수준 높은 의식활동과 관련된 뇌파로 알려진 감마파가 크게 증가할 때 근사체험을 했다고 혼동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저산소증이나 마취제 등으로 인한 환각은 단편적인 데 비해 근사체험자들의 경험은 완결성을 갖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심장박동이 멈춰 15~20초 뒤 뇌 기능이 정지되더라도 흐릿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인식과 감정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롬멜 박사는 “뇌가 기능을 멈춰도 사람들이 의식을 갖고 있다”며 “근사체험이 육체는 죽어도 의식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마치 마취제로 의식을 멈추게 했다가 되돌려놓는 것처럼 의식이 몸을 떠나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소수지만 중첩성과 얽힘성 등이 특징인 양자역학을 통해 사후 의식을 규명하려는 시도도 나온다. ‘의식이 (에너지의 불연속적인 최소 단위인) 양자보다 작은 단위인 뇌의 미세소관에서 발생하는데 뇌 기능이 멈추면 의식을 이루는 양자 정보가 복잡하게 얽혀 영혼으로 존재하게 된다(스튜어트 하메로프 미국 애리조나대 마취과 교수)’는 식이다. 물론 양자역학으로 의식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론도 곧바로 뒤따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쓴 셸리 케이건 미국 예일대 철학과 교수는 “사후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죽음이 삶의 자세를 바꾼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 정부는 10년 전부터 매년 5월에 ‘죽음 알림 주간’을 열어 노후계획은 물론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나 유언장, 장기기증 서약서 작성, 장례계획 세우기를 통해 품위 있는 죽음을 맞도록 지원한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즐겁게 얘기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힘을 내자(존 언더우드 데스카페 창업자)’는 것이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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