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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외화내빈, 富쏠림 부추기는 정부의 면세점 행정

심희정 생활산업부장

시내면세점 3년 만에 2배 늘어

중소·중견 사업자 적자에 허우적

자금력 갖춘 대기업만 매출 증가

표심 노린 정부 책상머리 행정에

'면세점 드라마' 비극으로 치달아

“연말 시내 면세점 입찰이 미달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니 그때 너무 관세청을 질책하는 기사는 쓰지 말아주세요.”

두 달 전 열린 한 미디어 포럼에서 관세청 관계자는 일찌감치 신규 사업자들의 실적이 부진해 흥행이 저조할 것을 예감하며 아픈 기사는 자제해달라는 당부의 부탁을 했다.

다음달 시내 면세점 신규허가 신청접수와 함께 연말 인천국제공항과 시내 면세점 입찰이 열린다. 이 중 대기업 시내 면세점이 최대 5곳이 허용되지만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진 기업은 지난해 면세사업에 처음 진출한 현대백화점그룹이 유일하게 거론된다. 현대백화점의 경우는 현재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로 수익을 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처럼 뚜껑을 열기도 전에 흥행 실패가 공론화된 이유는 서울 시내 면세점이 제 살 깎기 경쟁으로 전락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서다. 불과 3년 만에 시내 면세점이 6개에서 13개로 2배 이상 늘어난데다 정부는 내년에 심지어 추가하겠다는 의지마저 보이는 상황이지만 이 진흙탕 싸움에 들어올 대기업도 남아 있지 않다.

당초 5년 단위 입찰 방식으로 바뀐 정부의 관세법 개정안은 신규특허 요건 완화를 통해 진입장벽을 낮춤으로써 재벌과 대기업에 편중된 허가 산업을 중소·중견 사업자들에게 문호 개방을 해준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시장 경제의 자연스러운 순환 논리를 무시하는 정부의 표심만 노린 책상머리 행정은 갈수록 정부의 취지와는 요원해지고 있다. 외관으로는 중소·중견 면세사업자 수가 급격히 늘었을지 모르지만 오히려 면세점 매출 구조는 대기업에 편중됐고 중소·중견은 적자로 허우적대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달 면세점은 2조2,421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8월에 썼던 사상 최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중국 국경절·광군제 등 빅이벤트를 앞둔 상황에서 대거 구매에 나선 중국 보따리상(따이궁)을 잡기 위해 대형 면세점의 경쟁적 프로모션이 맞물려 발생한 숫자로 해석된다. 두 달 연속 역대 최고기록을 경신한 외화내빈의 숫자는 사실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송객 수수료 지급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면세점 송객 수수료 규모는 1조3,181억원으로 151% 급증했지만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414억원으로 23% 감소했다. 특히 올 상반기에는 전체 송객 수수료 가운데 중소·중견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해 이들은 따이궁 매출의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 한 대학교수는 “애초에 면세점 사업은 직매입 구조로 덩치를 키워야 하는 규모의 경제기 때문에 중소·중견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며 “대기업은 면세점 숫자가 늘어나도 자금력으로 버틸 수 있지만 중소·중견은 신규가 생길수록 버틸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비롯된 속전속결 입국장 면세점 도입도 중소·중견사업자의 피해만 양산하고 있다. 인기 품목인 고급화장품·담배가 제외돼 취급 품목이 제한된데다 기내 면세점의 할인 정책 등 가격 경쟁에서 밀려 어려움을 겪을 것은 예상된 바다. 매달 적자 행진 중인 입국장 면세 사업자들이 담배 판매 허용을 요청하고 나섰지만 담배가 그들을 살려낼지도 의문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한 만큼 적자 상태로 입국장 면세점 문을 닫게 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에 담배 판매를 허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며 “나비효과처럼 또 다른 부작용이 튀어나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황금알 낳는 면세점’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기사를 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몇 년 만에 그냥 알만 겨우 낳고 있는 면세점은 손에 꼽는다. 그것도 물론 총알을 갖춘 대기업 몇 군데만 해당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잘 굴러가던 면세점 산업이 보이는 손에 의해 조작되면서 한국 면세점 드라마는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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