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중심부, 눈에 띄는 어느 건물 안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문득 바깥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각자의 장소와 공간에서 특별한 지금을 보내고 있을 그들과 만나 또 다른 미지의 장소와 공간을 탐험해보고자 합니다.
기자 역시 같은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외적으로 끊임없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남달랐던 조중현 디자이너. 그는 회사와 스튜디오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계없는 그래픽디자이너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그의 ‘놀이터’에서 그 경계의 지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업실 이야기 - 작업실과 놀이터 사이…그 경계의 공간
Q.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신분으로 외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저는 사실 처음부터 취업할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학부 시절부터 대학 친구 6명이 모여서 작업실을 운영해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외부 활동을 하다가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네요. 그러다가 디자인 분야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모인다는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경쟁해보고 싶었어요. 디자인 분야의 ‘슈퍼스타K’같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참여했다가 좋은 기회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 무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해보고 싶고 욕심이 많아요. 회사를 기반으로 외부에서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어요. 입사 전부터 작업실 생활을 해왔던 것이 지금 두 가지 영역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Q. 학부 시절 학교 밖에 동기들과 작업실을 차려 활동을 하는 것이 학풍의 영향을 받은 것인가요?
A. 사실 학부 때 그런 분위기는 별로 없었어요. 저 이후로 많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학내 교류가 별로 없으면서도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학생들끼리 자급자족 느낌으로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작업도 하고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김가든’이라는 선배 디자이너가 만든 ‘타이포그래피 소모임’에서 활동을 했었어요. 자연스레 권기영 디자이너를 알게 됐고 작업실을 얻어 ‘독스’라는 스튜디오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워낙 술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겸사겸사 친구들과의 ‘작업 놀이터’ 개념의 공간을 마련했었죠. 작업실 이름을 짓고 브랜딩도 진행하고, 렌더링을 통한 공간 디자인도 하고, 오픈 행사도 하고 등등. 열정 넘치게 진행을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금은 멤버들이 일단 뿔뿔이 흩어져 있어요. 훗날 다시 재결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Q. 2인 스튜디오 ‘독스’는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A. 저희가 작업실 오픈할 때 화양초등학교에서 성수동까지 따라왔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작업실에서 같이 동거를 하게 되었어요. 스튜디오 이름을 고양이와 연관된 무언가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저희가 모순적인 걸 좋아해요. 그래서 반대로 우리는 ‘개가 되자’고 이야기했어요(웃음). 또 저희 친구들끼리 영화 얘기를 많이 하는데 특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타란티노 영화 중에 ‘저수지의 개’라는 영화를 특히 좋아해서 우리는 더욱더 ‘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작업실 이름은 ‘저수지’, 우리는 여기에 사는 ‘개’로 하자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름이 너무 촌스러운 거예요. 결국 ‘저수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려고 해요. 로고타이프도 디자인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스튜디오를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Q. 한남동에 작업실 겸 자취방을 얻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핫한 가게들이 많아요. 그런 한남동 특유의 분위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마냥 모던하지도 않고 마냥 촌스럽지도 않은 가게들이 모여 형성된 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힙스터들의 성지이기도 하고요. 제가 다니는 회사가 분당에 있어서 출퇴근이 좀 힘들긴 하지만 나름 한 번에 가는 빨간 버스도 있고 교통이 편하답니다.
Q. 동네의 단골 가게는 어디인가요?
A. 저는 사실 술을 좋아해서 맛집보다는 작은 위스키바나 술집을 주로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무척 마음에 들어요. ‘Thirsty Thursday’ 라는 위스키 바를 주로 가요. 영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신 분이 운영하는 바인데 엄청난 위스키 박사님 같더라고요.
Q. 작업하다가 집중이 안 될 때 주변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 있나요?
A. 개인적으로는 정말 작업이 잘 안 풀리면 일단 그냥 집에서 잠을 자요. 밖에 나가기보다는 안에서 잠을 자면서 시간을 소모하는 거예요. 시간으로 배수진을 쳐서 작업을 진행합니다. 작업을 닥쳐서 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을 연출하는 거죠.
Q.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외부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비법은 뭔가요?
A. 이런 활동이 대부분 취미에서 시작된 일이다 보니 크게 제약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요. 무엇보다도 저는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성격이거든요. 회사 일만 하다 보면 루틴 해질 수 있으니 좀 더 역동적인 일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또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니까 상호보완적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결국엔 외부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하는 것이 양방향으로 인사이트를 주는 셈이죠.
Q. 굉장히 바빠 보이는데 여가 시간은 따로 없나요?
A. 디자인 작업이 저에겐 퇴근 후 저만의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업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위험한 발언일까요? 하하. 하지만 일을 병행하다 보니 시간 제약과 체력적 한계가 크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놀러 다니지 못했던 게 아쉽네요. 예를 들면 여행 같은 거요. ‘해외에서 몇 달 살아보기’ 같은 여유 있는 휴식을 즐겨보지 못했어요. 체력적인 부분은 최근에 헬스에 관심이 많아져서 열심히 운동하며 채우고 있습니다.
◇작업 이야기 -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매개체
Q. 전시나 처음 외주 받았던 작업은 루트가 어떻게 되나요?
A. 대학 재학 시절에 산업디자인과 교수님께서 개인 공간을 만들겠다고 아이덴티티 작업을 의뢰하셨었어요. 지금은 카페로 매우 유명해진 성수동의 ‘자그마치’라는 곳인데요. 오롯이 저 혼자 진행했던 첫 외주 작업입니다. ‘자그마치’라는 말이 결국 앞에 수식어구로 무언가를 강조해주는 의미이기 때문에 타입페이스에 장식을 더해서 아이덴티티 작업을 했습니다.
Q. 작업하신 포스터의 컨텐츠들이 재미있는 이벤트성 결과물인 것 같아서 흥미롭습니다.
A. 네 포스터를 작업하기 위해서 이태원 작업실 오프닝 파티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포스터와 애플리케이션을 디자인했죠. 실제로 가진 파티는 저희가 작업한 디자인에 ‘진짜’라는 영혼을 불어넣어 준 셈이에요. 보통 학생 때는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가정을 바탕으로 하는 가짜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저는 항상 후배들한테 이야기해주는 부분 중 하나가 ‘없는 행사를 있는 것처럼 만들어서 하지 말아라’입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가짜로 있는 행사는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디자인을 하기 위해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SNS를 보면 활발하게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계시던데 디자인 외적인 일에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A. 저는 그래픽디자이너이지만 최근에는 기획 쪽에도 포션이 치중돼있는 것 같아요. 뭔가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흥미롭더라고요.
지난해 ‘대강포스터제’라는 전시를 처음 기획했는데요. 친구들과 작업실에 모여 옛날 7080세대의 노래를 듣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거든요. 함께 흥얼거리다가 ‘옛날 노래로 포스터 만들면 재밌을 것 같은데?’라고 한 것이 포스터제의 시작이었어요. 구창모의 ‘모두 다 사랑하리’를 가지고 작업을 먼저 시작했었고요. 단지 포스터만 작업하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엮어서 디자인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전시와 세미나, 워크숍이 결합 된 형태로요. 올해 진행 중인 제2회 대강포스터제는 지난 1회 때 반응이 좋아서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일민 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소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후원을 받아 다양한 굿즈도 함께 제작했어요. 이번에도 그래픽디자인에서 파생된 하나의 축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요. 많이들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함께 더불어 즐거운 영향을 미치는 디자이너
Q. 그래픽디자이너로서 앞으로의 포부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A. 그래픽 디자인이 조금 더 밖으로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누구야’라고 질문했을 때 일반적으로 그래픽 분야의 디자이너 이름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사회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는 영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지금 전반적으로 과도기인 것 같은데 디자이너들이 조금은 적극적으로 모이고 뭉쳐서 목소리도 내고 프로모션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면 더 좋지 않을까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A. ‘홀리’라는 친구가 의상 디자이너인데 본인 작업실에서 론칭 파티를 했었거든요. 그때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도와준 적이 있어요. 현재도 품앗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서로서로 도움을 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에게도 회사 밖에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고 있어요. 그래픽디자이너로서 디자인을 통해 ‘진짜 콘텐츠’도 기획하고, 디자인 네트워킹도 다지고, 서로 도움받는 현상이 무척 기쁘고 좋아요. 저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경험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운이 좋았는지 실력 있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주변에 정말 많아요. 그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 멘트는 꼭 적어주세요!
/구선아 기자 schatzs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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