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백스앤카엘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임상 2상 시험에서 강력하고 명확한 효과를 보여줬습니다. 앞으로 최대 10년까지 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문찬일 젬백스앤카엘 중앙연구소장 박사)
‘미지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치매 치료제 신약개발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지난 2003년 엘러간의 ‘나멘다(메만틴)’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긴 후 최근 들어 임상 2상 성공 등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분야는 전 세계 치매 환자의 60~70% 정도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치료제다.
가장 최근 희소식을 전한 곳은 국내 기업인 젬백스앤카엘이다. 5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알츠하이머 임상시험 콘퍼런스에 이어 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자사 알츠하이머 치료제 ‘GV1001’의 국내 임상2상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문 박사는 “(기존 치료제인) 도네페질을 단독 투여한 대조군에서는 중증장애점수(SIB) 점수가 7.23점 감소한 반면 GV1001 1.12㎎을 투여한 시험군에서는 0.12점 감소에 그쳐 대조군 대비 탁월한 개선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젬백스는 2017년 8월부터 올해 9월까지 국내 12개 의료기관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96명을 대상으로 2상을 진행했다. SIB는 중증치매 환자에서 기억력·시공간력 등 9개 항목을 평가하는 검사로 100점 만점을 획득하도록 구성돼 있다. 젬백스는 국내 3상을 진행하는 것과 동시에 내년 3~4월께 미국 2상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기업인 바이오젠도 알츠하이머 극복을 위한 여정이 한창이다. 바이오젠은 알츠하이머 임상학회를 통해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 ‘아두카누맙’의 유의미한 임상 3상 결과를 내놓았다. 발표에 따르면 임상시험 참가자 중 일부에서 아두카누맙의 용량을 높여 투여한 결과 사고 능력 저하가 위약군보다 23% 덜했다. 아두카누맙은 알츠하이머를 유발한다고 알려진 뇌 신경세포 표면의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정맥으로 투여하는 주사제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앞서 바이오젠은 지난 임상 3상에서 2건의 임상시험을 동시에 진행하다가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중간 결과가 나와 올 3월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그러다 기존 임상에 참여한 3,285명의 환자 중 18개월간 치료를 지속한 2,06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아두카누맙의 용량을 높여 투여한 결과 일부 환자에서 상당한 임상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바이오젠은 이번 발표 결과를 토대로 FDA에 허가신청을 내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평균 수명 연장과 함께 사회 문제로 발전돼 온 치매 환자는 급속도로 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데다 FDA의 승인을 받은 치료제는 전 세계 단 4개뿐(도네페질·갈란타민·라바스티그민·메만틴)이다. 따라서 블루오션을 장악하기 위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데 아직까지는 1997년 출시된 도네페질이 여전히 세계 치매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대체 약물이 없는 상황이다. 실제 치매 치료제는 개발 실패율이 99%에 달해 항암제 신약 개발 실패율인 81%보다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치매 치료제에 도전했다 쓴맛을 봤다. 지난해 세계 1위 제약사인 미국의 화이자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을 중도에 포기하고 300명 정도를 감원했다. MSD도 2017년 초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로부터 알츠하이머 치료제 임상이 무효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같은 해 2월 초기 단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중단됐다. 존슨앤드존슨과 로슈 역시 임상시험을 포기했다.
난공불락의 치매 치료제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K바이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동제약은 천연물 기반 치매치료제 후보물질 ‘ID1201’의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ID1201’은 멀구슬나무의 열매인 천련자에서 추출한 천연물로 치매의 주요 발병 원인을 억제하고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작용을 보여 새로운 치매치료제로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ID1201’은 동물 시험에서 치매의 다양한 원인들을 차단해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거대 제약사들이 두손 두발 다 들었던 치매 치료제 개발에 최근 들어 조금씩 희망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암보다 더 하다는 치매도 언젠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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