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등장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북미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로켓맨과 늙다리라는 거친 말폭탄 속에 무력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2017년 9월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정부는 남의 나라 일 마냥 팔짱만 끼고 있어 걱정스럽다. 북한에서 김영철과 리수용이 잇달아 말폭탄을 쏟아낸 9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는 생략한 채 록밴드 U2 멤버를 만난 자리에서 ‘평화’와 ‘통일’을 언급했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안보 현안에는 침묵하고 ‘독일통일’‘남북평화’만 설파했으니 공허하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겠는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북한은 크리스마스에 고체연료를 써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는 장면을 보여줄 것”이라며 마치 북한 대변인처럼 말했다. 이렇게 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하는 사이 북미관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전의 대치국면으로 돌아가고 있다. 특히 북한의 겁박이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북한이 실제 ICBM 발사나 핵실험에 나선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수 있다.
그러잖아도 트럼프 대통령이 무력사용을 언급하고 북한도 상응 대응을 꺼내 든 상태다. 청와대는 엄중한 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총선 표를 계산하면서 북한 눈치나 살피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제라도 문 대통령이 직접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