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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레오의 테이스티오딧세이] 속이 꽉찬 '한재 미나리'...볶음요리에도 식감·향 살아나





런던에 여행을 간다면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호에 떡하니 차이나타운이 있다. 이곳에 가면 나는 늘 먹는 메뉴가 있는데 북경오리에 고추와 마늘이 들어간 모닝글로리 볶음이다. 모닝글로리(공심채)는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재배되고 요리에 많이 사용되는 채소다.

미나리를 먹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닝글로리(공심채)를 먹을 때 단번에 미나리를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모닝글로리는 시각적으로나 식감적으로도 미나리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모닝글로리와 미나리는 둘 다 습하고 일조량이 풍부한 곳을 좋아한다. 생육 조건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으나 미나리는 여름에 재배할 수 없는 식물이며 공심채는 겨울에 재배할 수 없는 식물로 각각 수확시기가 다르다.

이번에는 개나리보다 훨씬 먼저 봄을 느낄 수 있는 한재 미나리를 만나기 위해 청도로 향했다. 청도에서 만난 한 농부는 한재에서 유기농으로 미나리 농장을 하고 있다. 이 농부는 미나리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옛날부터 청도에서 가장 물이 좋기로 유명한 한재는 주변 마을에서도 물을 길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마을로 유명했다고 한다. 한재의 옛 이름은 대현이라고 한다. 한재와 대현은 큰 땅, 큰 골짜기와 같은 뜻이라고 한다. 우리는 큰 골짜기와 깨끗한 개천이 흐르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을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재는 정말 포근하게 산이 감싸 안은 듯한 편안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도 미나리 마을이 있었다. 늘 논보다도 훨씬 물이 많이 받아져 있었고 뻘 속에서 힘들게 일하는 농부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늘 진흙투성이의 모습이었고 심지어 거머리도 많았다. 어린 나에겐 정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 기억과 함께 나는 미나리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곳은 내가 알던 미나리밭이 아니었다. 물이 없었다. 아니, 다시 보면 물은 있지만 땅밑으로만 아주 자작하게, 발이 많이 빠지지 않을 정도의 물이 있어서 스펀지를 밟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미나리의 실뿌리들이 땅 위로 철수세미처럼 엉켜 있어서 발이 잘 빠지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게 정말 신기했다.

이 농부는 예전에 내가 본 미나리 농장은 미나리 줄기가 꺾이지 않게끔 물을 받아 키우는 방식이고 한재는 땅의 특성상 물을 가두어 둘 수 없는 모래가 많은 땅이기 때문에 밀식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넘어지지 않게 받쳐 주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키운다고 했다.

한재 미나리의 특성은 뿌리에 가까운 줄기 쪽을 보면 자주 빛을 띤다는 것이다. 그곳을 꺾어보면 다른 미나리와는 다르게 속이 꽉 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미나리의 경우 물속에 오래 있게 되면 미나리는 뿌리에 공기를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 줄기를 부풀려 속을 비워 빨대 형태로 만들어 뿌리로 공기를 전달한다. 그래서 미나리가 줄기 속이 비어 있게 된 것이다. 그에 반해 한재는 지역 특성상 땅 위에 물이 없기 때문에 뿌리는 공기 공급을 원활히 받게 되고 그로 인해 아래쪽 줄기는 속이 빨대처럼 공간이 생길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물이 없으니 거머리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재 미나리는 특유의 독특한 식감과 맛, 향이 만들어지게 됐다.

미나리는 과거 궁중 요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우리나라의 음식에 사용됐다. 숙회, 나물, 전, 찜, 탕 등 다양한 요리에 주재료보다는 부재료로 주로 사용됐다. 그런데 늘 궁금했던 것은 왜 공심채처럼 볶음 요리가 없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미나리는 볶으면 질겨진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미나리는 오래 익히면 당연히 질겨진다. 그렇지만 한재 미나리는 일반 미나리와 다르게 속이 꽉 차 있기 때문에 볶음요리에도 식감이나 향이 좋아지며 정말 맛이 좋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으깬 마늘, 건고추를 부숴 넣고 중간 불과 큰 불 사이로 미나리를 팬에 넣고는 7~10초 정도를 볶아 간장이나 액젓으로 간을 맞춰 접시에 담아주면 맛있는 요리 한 접시가 완성된다./‘식탁이 있는 삶’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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