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책꽂이-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 "진정한 보수란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제시 노먼 지음, 살림 펴냄

프랑스혁명 기반 사회계약론 거부

극단주의 맞선 '보수의 아버지' 버크

진정한 개혁은 급진적 변화 아닌

'사회질서 진화 시키는 것' 설파

길 잃은 한국 보수 나아갈방향 제시





프랑스 혁명의 예견된 참상(제임스 길레이, 1796) /사진제공=살림


“힘보다는 인내심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보수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에드먼드 버크(1730~1797)가 남긴 명언 중 하나다. 영국의 ‘황금시대’를 대표했던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 철학자 데이비드 흄, 비평가 새뮤얼 존슨,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 등에 비해 국내에서는 다소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영국에서는 수많은 명언을 남긴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신간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는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버크 평전이다. ‘전통과 보수의 나라’ 영국 보수주의 정치철학의 창시자인 버크의 사상은 보수가 여전히 재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보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의 초상화(조슈아 레이놀즈 경, 1767-1769) /사진제공=살림




버크의 사상의 요체는 바로 사회 질서와 공공선이다. 버크는 이에 해가 되는 모든 종류의 극단주의와 권력 남용에 저항했다. 어느 하나의 세력, 하나의 주장에 경도돼 극단으로 치닫는 전체주의적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특히 그는 프랑스 혁명 등의 사상적 배경이 됐던 사회계약론을 거부했다. 이것이 그가 보수주의자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버크가 사회계약론 자체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옹호한 것은 홉스, 로크, 루소의 사회계약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홉스에게 사회계약은 군주가 통치할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토대였고, 로크에게는 인간이 생명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고 누리기 위한 실용적인 수단이었다. 때문에 사회 계약이 탄생시킨 군주는 혁명으로 축출할 수 있었다. 또 루소에게는 개인과 집단의 의지가 하나가 되는 장치의 첫 번째 단계였다.

버크는 다음의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러한 개념들을 부정했다. 첫 번째는 사회 질서가 존재해야 집단 정체성의 존재가 정당화되는데, 밑도 끝도 없이 집단 정체성의 존재가 정당화된다고 가정한다는 것. 또 이들의 개념은 혁명을 일으킬 권리를 허용하지만, 혁명권을 부여할 수 있는 사회질서는 없다는 것. 마지막으로 사회질서 자체보다 폭도의 일시적인 충동을 우선시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버크의 사상에는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수 있는 자연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숭고함과 아름다움이라는 우리의 사상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는 글에서 “사회 질서는 그 자체로 숭고하다”고 말하며 사회 질서에 대한 예찬을 펼쳤다. “인간의 이해를 훌쩍 뛰어 넘고, 사회질서를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 자기 보존의 본능을 불러일으키며, 경외심과 겸허함을 느끼게 한다. 사회질서는 대물림되고, 각 세대마다 사회질서를 보존할 의무가 있으며, 가능하다면 향상시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리고 사회질서에서 빠져나갈 도리는 없다.”

그렇다고 버크가 변화 자체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그가 반대한 것은 급진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에서 그는 “변화를 일으킬 수단이 없는 국가는 국가를 보존할 수단이 없는 셈”이라고 지적하며 변화의 수용이 사회질서를 지키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래야만 사회질서 자체가 끊임 없이 진화하면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에게 반드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이는 기존 구조와 과거의 개혁을 토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점, 개혁의 강도는 처치해야 하는 악의 수준에 부합해야 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 변화를 행하는 주체와 변화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알맞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이 개혁에 있어 고려돼야 할 사항이라고 전제했다.

버크의 사상이 모든 보수주의자가 추구해야 할 완벽한 가치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정치적 원칙을 중시한 그의 생애와 급진적 변혁의 결과에 대한 그의 놀라운 혜안은 200여년 뒤를 사는 우리가 그의 사상을 경청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다. 영국이 아일랜드를 통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그의 예측은 대부분 맞아떨어졌으며,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게 되고 프랑스 혁명은 권력남용의 혼돈 끝에 군인 통치의 시대를 열 것이란 그의 예언도 적중했다. ‘원조 보수주의자 버크’의 통찰력이 빛나는 대목이다. 2만3,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