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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루시드폴, 존재에 대한 예의

‘농부가수’ 루시드폴이 10년지기 반려견 보현과 함께 노래를 만들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대학원 생명공학 박사 출신인 루시드폴은 제주에서 아날로그적 삶을 살며 농부, 작가, 가수 1인 3역을 오가고 있다.

루시드폴은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 “보현이 간식인 콜라비를 먹는 소리를 채집했고, 컴퓨터로 변주해서 만든 곡”이라고 ‘콜라비 콘체르토’에 대해 밝혔다. 이어 “음악적 파트너로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기분으로 곡을 만들었다”며 “저작권료가 나오면 보현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루시드폴 정규 9집에 수록된 ‘콜라비 콘체르토’는 ‘반려견 보현이 작곡 및 연주’ 한 곡이다. 한마디로 보현이 콜라비를 먹는 소리에서 착안해 탄생한 곡이다. 이 곡은 이번 앨범에서 루시드폴이 고민한 ‘소리’와 음악’의 경계에 대한 물음을 근본적으로 던지며, 반려견이 대등한 위치에서 음악을 만드는 주체로 참여한 대중가요 역사상 최초의 사례가 될 것이다.

루시드폴은 이 곡에서 편곡을 맡아, 보현이 콜라비를 씹을 때 나는 소리를 채집해서 그래뉼라 신테시스(granular synthesis: 소리의 작은 단위부터 출발해 이를 배열, 가공, 조합하여 다른 차원의 사운드를 만드는 디지털 음악합성 기법 중 하나)로 템포와 음의 높낮이를 변주해 노래로 완성시켰다. 연주자는 보현 한 명이지만, 한 명의 연주에 시간과 템포와 음의 높낮이를 변주해 보현이 무수한 보현과 협주하는 것과 같은 음악이 탄생했다.

그는 “강아지들이 뭔가를 먹을 때 사람의 입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청량한 소리가 있다. 객관적으로 들었을 때 굉장히 좋은 소리다. 상쾌한 ASMR(감각소리) 같다.”고 표현했다. 이어 “ 마치 여러 명의 보현 혹은 강아지가 같이 콜라비를 먹으면서 각각 다른 속도와 다른 높낮이로, 하나의 합주를 하는 것처럼 곡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루시드폴은 지난 16일 정규 9집 앨범 ‘너와 나’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은 ‘너의 노래’, ‘나의 노래’ , ‘너와 나의 노래’ 3부로 나뉜다. 이번 앨범은 2017년 정규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의 에세이 뮤직을 발매한 지 2년 만에 내는 음반과 책이다. 처음부터 보현과 함께 할 생각은 없었다. 앨범 발매 전에 출판사에서 보현의 사진집을 제안해왔지만, 사진집이 아닌 다른 종류의 것을 보현과 함께 하고 싶었다. 시기는 손가락이 부러져 철심을 세 개 박는 수술을 마쳤을 때였다.

“수술을 해서 기타를 못 치니 다음 앨범이 막막해지고 기타를 다시는 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했다. 기존에 내가 하던 음악, 기타 연주곡들은 듣고 싶지 않더라. 그 외 나머지 음악을 들으니까 갑자기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자유로워졌다. 보현이라는 하나의 테마로 고정시킨다면, 음악적 작업방식이 더 자유로워질 거란 생각에 출판사에 책과 음반을 함께 하자고 했다. ”

반려견이 대등한 위치에서 음악을 만드는 주체로 참여한 점도 인상 깊지만, 루시드폴은 “언젠가는 (보현과) 헤어지겠지만, 보현의 소리 DNA로 뭔가 새로운 음악을 만들면 노래 안에서 보현이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첫 반려견 ‘문수’에 이어 두번째 반려견인 ‘보현’이란 이름 속에 담긴 의미도 특별하다. 절에 가면 마주할 수 있는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을 연상시킨다.







루시드폴은 “절에 오래 다니는 사람은 아닌데 스스로 불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나무관세음보살” 할 때 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기도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보살님 덕 좀 보려고 그렇게 지었다. 문수와 보현이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두 가지 의미를 상징해 반려견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했다.

보현의 저작권료는 “보현이를 위해서만 쓰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루시드폴은 “저작권협회에 ‘보현’을 아티스트 네임으로 등록할 것이고, 저작권료가 나오면 보현 앞으로 돈을 모아 반려견과 관련해서 기부를 할 것이다“고 전했다. ”

앨범을 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루시드폴은 “이번이 특히 더 그런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손가락 수술 후 현재 몸 상태는 괜찮다고 했다. 95% 정도 회복한 상태. 그럼에도 앨범을 만든 과정에 대해 “나 자신과의 사투를 벌인 느낌이다”고 전했다. 그는 “앨범을 만들면서 ‘내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방대한 양의 작업을 끝내서 홀가분한 기분이다.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해냈다. 건강원에 가면 과일이나 양배추, 비트 같은 채소로 즙을 짜주지 않나. 그렇게 짜내서 만든 음악이다. 내가 나를 잘 돌보지 못해서 대견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앨범은 단순히 반려견과의 교감을 통한 음악이란 점 외에도 ‘존재에 대한 예의’를 담았다. 루시드폴이 생각하는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존재에 대한 따스함 가득한 눈”이 음악 곳곳에 녹아있다.

“인간과 반려견의 관점을 벗어나서 현 사회는 약한 존재에 대한 혐오가 쉽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쉽게 무시하고 배려는 없고 갈등이 많은 걸 본다. 그런 혐오는 좁게는 사람과 사람, 넓게는 동물과 인간일 수 있다. 이 시대를 공유하고 있는 존재라면 같이 살아가고 있는 기쁨, 같이 살아가고 있는 존재에 대한 예의가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이번 앨범을 들어주시면 좋겠다.”

[사진=안테나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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