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영 서울고검 검사(57·사법연수원 17기)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을 두고 “나라의 사법체계가 송두리째 뒤집히는 중차대한 일을 별다른 연구도 없이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따라 과감하게 결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이날 햇수로 30년인 검사 생활을 마치고 사직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임 검사는 전날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지난 연말에는 공수처 법안이 통과됐는데, 조금 전 총장실 앞에서 신고 대기 중에 뉴스를 잠시 보니 오늘은 수사권조정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된 모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임 검사는 검찰개혁으로 추진된 두 법안에 대해 “프레임 싸움에서 진 결과”로 해석했다. 그는 “공수처, 수사권조정은 위헌적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하지 않고,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프레임 안에 들어간 뒤 결과를 조금이라도 옳은 쪽으로 이끌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이미 출발점부터 잘못된 목적지를 겨냥하고 있었다”며 “존재 자체가 위헌적이고 향후 운용 과정에서도 온갖 위헌적 사태를 초래할 공수처는 물론이지만, 근대국가가 인권 보호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어렵사리 탈피했던 경찰국가로 되돌아가려는 시도의 첫 단추를 꿰는 수사권조정 법안 역시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에서 볼 때는 위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위헌 결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이미 법제화를 통해 생명력을 얻고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한 공수처, 수사권조정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폐해를 끼치게 될지 걱정”이라며 “초임검사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검찰에 입문할 때 가슴에 새기기 마련인 ‘거악 척결’이라는 구호는 이제 검찰 뿐만 아니라 국민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됐다“고 했다.
임 검사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검찰의 자업자득인 면도 있다”고 했다. 그는 “늘 하는 얘기처럼 우리가 좀 더 제대로 일했으면 국민이 우리 편이 되고, 그러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임 검사는 검찰 가족에게 두 가지 부탁을 남겼다. 그는 “검찰을 정치권이 넘보지 못하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달라”며 ‘정치적 중립성의 확보와 인권보장기관으로서의 존재가치 확인’을 구체적인 방향으로 제시했다.
또 일선의 검사들에게 사건 기록을 성실히 봐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제 경험상 검사 업무는 경찰이 송치한 의견서가 무슨 뜻인지 이해되고, 허점을 발견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데서 출발한다”며 “검사가 의견서만 정확히 파악해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청탁이 없었던 대부분의 사건은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나머지 사건들은 기록 속에서 왜곡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당사자들 변호인의 사실관계나 법률적 쟁점에 대한 의견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과오가 바로잡힐 수 있다”며 “이렇게 작은 사건에서 신뢰를 계속 쌓아간다면 언젠가는 국민의 검찰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건을 좀 더 빨리 처리하려고 노력해달라”고도 했다. 그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장기 방치하는 일은 별다를 것 없는 업무의 일환일 수 있어도 당사자들에게는 피를 말리고, 잠을 못 이루는 기간이 된다”며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되면 결론을 주저하지 말고 빨리 손에서 떠나보내 다른 사람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임 검사는 “여러분들께서는 검사라는 자리가 국민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위치인지를 깊게 무겁게 생각해 주셨으면 감사하겠다”며 글을 마쳤다.
임 검사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55)이 후보자일 당시인 지난해 9월4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임명을 반대한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임명 뒤인 9월20일에도 “신임 장관이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건 유승준이 국민 상대로 군대 가라고 독려하는 모습”이라면서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서울 배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임 검사는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 의정부지청과 수원지검, 서울지검 검사, 부산지검 공안부장검사,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부산지검 형사1부장검사, 서울고검·대전고검 검사를 지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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