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최영기칼럼] 노동조합은 무엇으로 사는가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40여년전 美·英노조 쇠락한 반면

獨·스웨덴노조 존중받게된 배경은

절제와 양보의 리더십 가졌기 때문

무책임·남탓 노조엔 미래도 없어





다음달 아카데미상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경쟁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 맨’은 미국 노동조합의 전설적인 지도자 지미 호파의 몰락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때 대통령 다음으로 힘이 세다던 호파가 권력의 보호막이 걷히면서 고립무원에 빠지고 결국 오랜 심복의 총격에 살해되는 스토리는 이후 전개될 미국 노동조합운동의 예고편과도 같다. 이즈음 미국 노동조합은 부정과 비리에 찌든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당했고 노동운동의 메카와도 같았던 디트로이트는 싸고 질 좋은 외국 차들에 밀려 생산기반을 잃어가고 있었다. 위세를 잃던 노동조합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파업 중이던 항공관제사 1만여명을 해고(영구 대체근로)하는 조치였다. 벼랑 끝에서 미국노총(AFL-CIO)이 하버드대 연구팀에 던진 질문이 ‘노동조합은 무엇으로 사는가(What do unions do?)’였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공정하게 대변하는 본래적 기능을 잃고 독점적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되는 순간 미래가 없다는 연구팀의 경고는 미국 노동조합에 사후약방문이 됐지만 오늘날 우리 노동조합이 새겨야 할 값진 교훈이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와 민주노총 출범 25주년을 맞는 해다. 바라건대 앞으로 50년 노동조합은 무엇으로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특히 민주노총은 1995년 법외노조로 출범한 후 꾸준히 세를 확장해 마침내 제1노총의 지위를 얻었다. 더구나 6만여명의 전교조가 민주노총에 공식 편입된다면 한국노총과의 조합원 격차는 10만여명으로 벌어진다. 이제 민주노총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이것이 꼭 민주노총만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 노동조합이 1980년대 미국 노동조합의 길을 가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성찰이 필요하다. 첫째는 법과 제도를 존중하고 불법을 근절하겠다는 각오다. 이는 지난해 불법행위로 현직 위원장이 구속됐던 민주노총에 더 시급한 과제이지만 한국노총도 예외는 아니다. 신임 기업은행장의 출근을 막는 금융노조의 불법행동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법에 보장된 많은 권한을 갖고 70여개 정부 위원회에도 참여한다. 여러 정당과 긴밀히 연계돼 있고 노동조합 출신의 유력 정치인들도 많다. 언론과 홍보 면에서도 아쉬울 게 없다. 손에 쥐고 있는 법적·제도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는 능력, 즉 소프트파워를 길러야 불법투쟁도 피하고 사회적 신뢰도 높일 수 있다.



둘째는 절제와 양보의 리더십이다. 노동조합이 기득권의 포로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울타리 밖 노동자의 입장을 감안해야 한다. 미래 노동자까지 생각한다면 결국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놓고 행동해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대타협에 나섰던 바로 그 정신이다. 스웨덴의 제1노총인 LO는 임금교섭을 할 때 주변국과의 가격 경쟁력, 노동자 간 불공정한 격차 최소화 등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독일 노동조합이 기업 경영과 정책 결정의 파트너로 존중받으며 4차 산업혁명에 보조를 맞출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리더십이 있다. 1980년대 미국과 영국의 노동조합이 쇠락의 길을 걷는 반면 스웨덴과 독일 노동조합이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는 필요할 때 절제와 양보의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친노동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도 노동조합이 절제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만 보더라도 2018년 최저임금을 16.4% 올릴 때 양 노총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을 1년만이라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한국노총은 9%, 민주노총은 7% 인상을 요구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도 양 노총은 어떤 양보안을 내지 않았다.

스스로의 책임은 제쳐두고 정부를 탓하고 기업을 옥죄는 행태로는 노동조합의 50년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