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제공조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가 민족공조의 속도를 너무 높이면 한미동맹은 탈선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대북 개별 관광 추진을 두고 한국과 미국 간에 불협화음이 커지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19일 한미동맹의 결속력 약화를 우려했다. 남북교류협력 사업 등 북한을 중시하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국제사회와의 대북제재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미국의 외교노선과 필연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무부가 한국 내에서 ‘주권침해’ 논란을 초래한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대사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한미 간의 입장 차가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서울경제신문펠로(자문단)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해리스 대사 논란을 볼 때 한미동맹이 약해지고 있다고 본다”며 “우리 정부가 대북 유화정책을 강행하면 할수록 한미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갈등까지 감수하면서 정부가 대북 개별 관광을 밀어붙였음에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 시설을 2월 말까지 철거할 것을 남측에 통보하며 통미봉남 기조를 사실상 공식화한 상황에서 남한의 개별 관광 제안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금강산 관광의 경우 북한은 사실상 한국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으로도 판단된다”며 “지난해 말부터 요구한 남측의 금강산 시설 철거를 2020년 2월로 기간을 한정한 것은 중국 관광객 유치에 집중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개별 관광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데는 대북 성과에 대한 초조감과 함께 총선을 앞둔 국내 정치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관측된다. 박 교수는 “북한에 우리가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보여주기”라며 “정부가 남북관계에 있어 미국에 너무 끌려간다는 정부·여권 지지자들에 대한 불만에 대한 대응차원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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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양측 모두의 호응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개별 관광을 추진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해온 한미동맹의 균열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안보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한미가 외교 현안을 두고 계속 감정적으로 스파크가 튀게 되면 미국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세컨더리 보이콧,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 문제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력갱생을 토대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북한을 저지하는 데 정부의 개별 관광 추진이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핵 문제 진전이 없는데 개별 관광을 추진하면 북한에 돈이 들어가게 된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비핵화 대화에 나온 것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아픔이 됐기 때문에 그걸 풀기 위해 나왔는데 제재가 느슨해지면 북한이 무슨 이유로 핵을 포기하겠냐”고 반문했다.
남북관계 진전의 핵심 목적도 북한의 비핵화에 있는 만큼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 센터장은 “현 정부는 개별 관광을 얘기하면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북한의 비핵화라는 올바른 정책의 길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대북정책 외에도 방위비 및 호르무즈 해협 파병 등 한미가 중요 안보 현안을 두고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는 만큼 동맹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해리스 대사 논란으로 인한 한미 간의 불협화음의 근본 기저에는 혈맹을 비즈니스 관계로 바라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우리도 한미동맹의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며 “우리도 안보비용을 내는 대신에 미사일 사정거리 협상 및 핵 재처리 문제 등에서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새로운 관계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우인·양지윤·김인엽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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