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21일 변호사들 수백 명을 세무당국에 세무사로 등록시킨다. “변호사의 세무사 업무 진출을 막는 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국회가 기한 내에 세무사법 개정을 하지 않자 압박에 나선 것이다.
변협은 21일 오전 서울지방국세청에 변호사들의 세무사 등록 신청서를 대행해서 낸다고 20일 밝혔다. 변협에 따르면 이 단체는 이달 8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일주일간 2004~2017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전국 회원들을 대상으로 세무사등록증 대행 신청을 받은 결과 총 288명이 신청서를 냈다. 이날 변협 임원들은 서류 미비 등 일부를 제외한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변협은 이어 20일부터 오는 31일까지 2차 대행 신청을 받는다.
변협 관계자는 “1차 신청 이후에도 세무사 등록을 원하는 회원이 상당수라 2차 신청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변호사들이 이렇게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은 헌재가 원칙적으로 올해부터 변호사들에게 세무대리 업무 진출의 길을 열어줬는데도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아 입법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2018년 4월 세무사 자격을 보유한 변호사가 관련 업무를 볼 수 없게 막은 기존 세무사·법인세·소득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세무사법이 변호사에 불리하게 개정된 2003년 말 이후부터 세무사 자격 자동부여 조항을 아예 폐지한 2018년 이전에 변호사가 된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당시 헌재는 지난해 12월31일까지 국회가 세무사법 등을 개정하라고 주문했지만 지금껏 대체입법은 마련되지 않았고 올 1월1일부로 기존 법 조항의 효력만 소멸됐다.
헌재 결정 취지대로라면 변호사들은 세무사로 별도 ‘등록’하지 않아도 세무대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일단 기존처럼 국세청에 등록 신청이라도 내는 고육책이자 압박책을 꺼낸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변호사들이 세무사 등록을 신청하더라도 국세청은 실무에 필요한 홈택스 코드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법조계는 변협을 통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세무사 등록을 신청한 변호사 수도 7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변협 관계자는 “헌재 결정의 취지에 따를 때 변호사는 세무사 등록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지만 입법공백 상태인 현재는 현행 세무대리 실무상 세무사 등록을 하지 않으면 홈택스 코드가 부여되지 않아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도 논란의 대상이다. 지난해 국회는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토대로 한 대안을 마련했는데 여기에는 여덟 가지의 세무 업무 중 회계장부 작성, 성실신고 확인 업무는 변호사에게 허용하지 않는 내용이 담겼다. 대다수의 변호사는 변호사에게 사실상 모든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는 정부안을 지지하고 있다.
각 변호사들의 세무대리 업무 가능 범위가 모호해짐에 따라 납세자들 입장에서도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다음달 법인세 신고와 5월 소득세 신고가 고비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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