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인교칼럼] 트럼프 홍보물 된 미중 1단계 합의안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中 일방적 불리한 합의문 수용은

美와 갈등으로 인한 경제난 때문

中 설비재·중간재 美수입 확대로

한국산 수요감소 가능성 대비해야





지난 15일 미국과 중국이 1단계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문 조항의 많은 부분에서 중국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과제들을 제시하고 미국은 이러한 내용을 확인한다는 형식으로 돼 있다.

하원의 탄핵과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대중국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음을 국민에게 알릴 홍보자료가 필요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명일 당일 공개된 합의문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 홍보물인 듯하다. 합의문 커버 중앙에 미 대통령의 문장을 새기고 좌우에 미국과 중국의 국기를 조그맣게 배치했다. 다음 장에는 미 무역대표부(USTR)와 재무부 문장을 큼지막하게 넣었다. 이 두 장만으로도 중국과 대등하게 체결한 합의문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중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아낸 것임을 드러내놓고 자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미중 합의문의 서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합의문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의전과 격식을 중시하는 중국이 부총리를 보내 서명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류 부총리가 미국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무역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을 상대로 협상을 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굉장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류 부총리의 격을 높게 봐 줬을 수 있지만 합의 내용에 대한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 것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협상 타결에 대한 환호성은 없고 차분한 편이다.

미국의 추가관세 부과를 막고 환율조작국 지정에서 벗어나게 된 점은 다행이지만 이를 위해 중국이 약속한 부담이 적지 않아 과연 제대로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집요한 요구에도 미국은 1,200억달러에 대한 15% 추가관세를 7.5%로 낮췄을 뿐 중국의 대미 수출 절반에 해당하는 2,500억달러에 대한 25% 추가관세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번 합의에서 중국은 2년간 2,000억달러를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농산물은 물론이고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 품목 리스트를 협정에 명시했다. 96쪽 합의문 중 40여쪽에 걸쳐 중국이 이행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중국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가를 꼼꼼히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링 방안도 명시했다.

합의문은 지난해 초 155쪽 합의문에서 60여쪽을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삭제된 내용은 중국 측에 불리한 내용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향후 이 부분이 2단계 협상 이슈가 될 것이다.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조항이 이번 합의문에 더러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지재권 분쟁 시 중국 측이 위반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했다. 통상 제소자가 피제소자의 위반 사실을 입증하는 것과 정반대다. 또 스냅백(snap back) 처벌조항을 도입해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이 일방적인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이 자국 무역제도를 개선하고 위생검역(SPS) 등의 이유를 들어 수입이 곤란하다는 핑계를 하지 못하게 못 박았다.

중국이 일방적인 부담을 지면서 불리한 합의문을 수용한 것은 무엇보다 경제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자 중국은 경기부양 총동원령을 내렸으나 경기하강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 전반에 걸친 난맥상에 직면한 중국 당국으로서는 미국과의 갈등 고조가 초래할 정치·경제적인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역전쟁을 진정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도 일정 수준 기대감을 가질 수 있지만 그동안 우리나라로부터 수입하던 기계 등 설비재와 중간재를 미국산으로 돌림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줄어드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미중 갈등의 밝은 면만 보려고 하지 말고 어두운 측면도 고려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