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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서경이 만난 사람]이호원 대한상사중재원장 "기업분쟁 해결엔 소송보다 시간·비용 덜 드는 중재가 최적"

단심제에 1년이면 결론...비밀유지도 가능해 관심 높아져

중재인 신뢰도 높일 수 있는 인증·등급제 조만간 도입

절차 표준화 위한 중재처리 매뉴얼 개정 작업도 진행중





“철도시설공단은 200억원 이하 분쟁사건이 발생하면 전부 중재로 해결하기로 최근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 이상 규모의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중재로 갈지 소송으로 갈지 심사합니다. 이는 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해처럼 법률적 정의가 아닌 구체적인 요소를 따져 타당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사건의 경우 전문가가 판단해주는 중재가 낫기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트레이드타워 대한상사중재원에서 만난 이호원(66·사법연수원 7기) 대한상사중재원장은 “우리나라의 거대한 경제가 원활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분쟁해결 자치가 필요한데 중재가 바로 그러한 제도적 인프라로 기능한다”면서 이 같은 사례를 들었다. 이 원장은 이러한 제도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것을 더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인식하기 바란다고 했다. 재판이 아니라 중재로 왔으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사건이 상당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사중재원은 지난해 443건의 중재사건을 처리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의 산업 규모를 감안할 때 중재로 해결되는 사건 수가 4,000여건에 달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원장은 “나 자신이 판사 출신이지만 재판보다는 중재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인 사건들이 여전히 법정에 가 있다”며 “중재 제도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널리 알리는 한편 한번 이용해보니 괜찮다고 느껴 또 찾을 수 있도록 품질 유지에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최형욱 사회부장 choihuk@sedaily.com



분쟁해결 수단으로 중재를 활용하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 지난 1966년 설립된 상사중재원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는 이 원장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는 공모를 통해 상사중재원 수장이 된 첫 원장이다. 이 원장은 2018년 7월 취임 직후 상사중재원의 옷부터 갈아입혔다. 기업이미지(CI)와 홈페이지를 바꾼 것. 특히 CI의 경우 40년간 써온 것을 교체했다. 대한상사중재원의 영어 약자인 KCAB를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CI로 구현한 것이다.

이 같은 쇄신은 중재 제도를 널리 알리기 위한 첫 시도였다. 민사소송은 연간 100만건에 달하지만 중재는 400여건 내외를 오간다. 민사소송 가운데 중재 해결에 적합한 사건이 수두룩하다는 게 이 원장의 판단이다.

중재는 판사가 아닌 중재인이 분쟁사건을 맡아 판정을 내리는 제도다. 중재 판정의 경우 대법원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판정이 나오면 국가가 판결과 똑같이 집행한다.

중재의 장점은 명확하다. 신속성과 비밀성이다. 우선 중재의 경우 3심까지 갈 수 있는 민사소송과 달리 단심제다. 따라서 통상 1년 내외에 판정이 나온다는 설명이다. 국가가 무상으로 진행해주는 재판과 달리 중재인 보수와 시설 사용료 등을 지불해야 하지만 시간이 짧아 사실상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중재의 비밀성도 당사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점이다. 사설 심리시설에서 양 당사자 및 중재인만의 참여로 진행돼 분쟁 여부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 원장은 “예컨대 1,000억원짜리 사업에서 10억원짜리 다툼이 생겼는데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려면 공개법정에서 진검승부를 벌어야 해 사업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중재를 이용하면 비밀심리를 통해 조용히 매듭짓고 사업은 이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판정하는 중재인이 전문가라는 것도 중재의 장점이다. 중재인의 자격 기준은 상당히 엄격하다. 업계 출신의 경우 실무경력이 10년 이상이면서 상장기업 임원 경력이 3년 이상 있어야 한다. 상사중재원은 1,200여명을 중재인으로 두고 있어 분야별 전문가의 풀이 넓다. 예컨대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는 30여명이 중재인단으로 꾸려져 있다.



소액사건도 중재를 이용할 수 있다. 중재를 위한 사건 청구액의 하한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당한 금액이 걸린 사건들은 소송과 중재를 두고 검토한 뒤 중재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상사중재원에서 처리하는 사건당 청구액은 연평균 25억~30억원가량이다.

특정 사건의 중재인은 양 당사자가 합의해 선정해도 되고 상사중재원으로부터 10여명의 추천을 받은 뒤 우선순위를 쓰는 방식으로 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중재인으로 나서기에 분쟁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이 원장은 “특정 분야 전문가인 중재인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라며 “사안을 빠르게 이해하고 단시간 내 결론을 내려줄 수 있어 양 당사자가 판정을 납득하기 쉬우며 따라서 만족도도 높다”고 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재로 갈지 고민이 된다면 상사중재원에서 무료상담을 받을 수 있다. 중재로 사건을 처리하는 게 적합할지, 또는 조정절차를 밟는 게 좋을지에 대한 상담이다. 상사중재원 분쟁조정센터에서는 이 같은 상담이 연간 1만여건씩 이뤄지고 있다.

건설업계의 경우 분쟁 발생 시 중재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다. 상사중재원에서 처리되는 중재사건의 3분이1 이상이 건설 분야일 정도다. 다른 산업계에서도 중재의 장점을 인식하고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원장이 남은 임기에 성과를 내려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이 원장은 각종 산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계약서에 표준중재 조항을 넣는 일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나중에 분쟁이 생기면 중재로 해결하자는 약속을 계약서에 삽입하는 것이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이러한 조항의 계약이 없더라도 중재로 오는 ‘사후 중재합의’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고 한다. 따라서 표준중재 조항이 많이 깔릴수록 중재로 해결하려는 사건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연예 분야의 중재사건이 40여건에 달한 것도 이러한 표준중재 조항 덕분이다. 수년 전 상사중재원은 한국엔터법학회와 협업해 표준중재 조항을 만든 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업계에 제공하는 표준계약서에 삽입한 바 있다. 이후 이 계약서가 엔터테인먼트사의 전속계약에 활용됐고 최근 들어 중재로 오는 사건이 부쩍 늘어나는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조항을 계약서에 넣기 전에는 연예사건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중재로 오는 사건은 연예 전속계약에 대해 기획사에서 잘못했느냐 연예인이 잘못했느냐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라며 “중재를 한번 이용해보니 전문가를 통해 빠르게 결론을 내릴 수 있으므로 좋아서 계속 찾는 것”이라고 했다.



상사중재원은 최근 소프트웨어 및 해사중재 분야에서 표준중재 조항이 담긴 계약서를 만들어 공급했다. 이 원장은 이러한 표준중재 조항 삽입 작업을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원장은 “물론 대부분의 계약은 말썽 없이 잘 끝나야 한다”며 “다만 불가피하게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재절차를 거칠지 먼저 검토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개별 회사와의 업무협약(MOU) 체결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철도시설공단과 MOU를 맺었으며 지난해에는 국방시설본부·해외건설협회와도 MOU를 체결했다. 국방시설본부의 경우 앞으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원칙적으로는 중재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한다.

상사중재원은 중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중재인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보통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중재인으로 활동하는 경우 중재절차 자체에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상사중재원은 지난해에는 중재교육원을 설립했으며 ‘중재인전문가 아카데미’ 프로그램은 올해로 18기째에 접어든다. 이 원장은 “업계 출신 중재인의 경우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감각 등의 교육을 받으면 더욱 좋은 중재인이 될 수 있다”며 “중재인 강의가 최근 수준이 굉장히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중재 제도의 수준도 높아졌다는 점을 자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중재인 수준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중재인인증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영국에서 우수 중재인에 대한 여왕 인증제를 운영하며 국제중재인에게 또 다른 인증을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제도다. 이 원장은 “중재인인증제·등급제를 실시하려고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다”며 “중재인의 실력을 더욱 높이고 중재에 대한 신뢰도도 제고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이 원장은 취임 이후 국내 중재심리 절차의 표준 모델 개발 작업도 진행했다. 중재인들에게 표준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중재절차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기대돼서다. 최근에는 중재처리 매뉴얼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중재절차의 표준화를 통해 서비스의 수준을 균질하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이 원장의 다양한 노력의 성과는 수치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연간 사건 수가 2016년 381건, 2017년 385건, 2018년 393건 등으로 300건대에 머물다 지난해 443건으로 치솟은 것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의 중재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맞는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법제 및 제도 정비는 이제 대부분 완료된 상태이기에 더 많은 회사들이 중재를 이용해 이점을 누리기 바란다”고 했다.

다만 이 원장은 국가에서 좀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진다면 상사중재원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중재사건을 처리해주는 수수료 등을 통해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좀 더 투자가 이뤄진다면 더 큰 꿈을 꿔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필요한 지원 분야로는 인력확충과 해외활동, 심리시설 현대화를 꼽았다.

이 원장은 “같은 아시아인 싱가포르와 홍콩 중재센터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 데는 국가의 과감한 지원이 있었다”며 “투자가 좀 더 늘어난다면 명실상부한 글로벌 중재센터로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리=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He is…

△1953년 충북 청주 △1968년 경기고 △1971년 서울대 법대 △1977년 사법연수원 7기 수료 △1980년 판사 임용 △1999년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2002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2005년 제주지방법원장 △2006년 서울가정법원장 △2008년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표변호사 △2010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년~ 대한상사중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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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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