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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항저우-'정치' 베이징 잇는 물길...대륙을 단일국가로 만들다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 이야기] <2> '中통합 프로젝트' 대운하

강남의 물자 '중원'으로 조달 목적, 수 양제가 처음 조성...총 2,700㎞

宋 때 정지됐다 원나라 들어서 부활...남북 축으로 바뀌며 1,800㎞로 축소

물류 인프라로서 '국가대동맥' 역할, 현재는 일부 기능만...고속철이 대체

대운하의 출발점인 저장성 항저우의 운하 전경. 과거 이런 화물선은 1,800㎞를 달려 베이징까지 연결됐었다. 황저우 인근에서는 여전히 물류에 사용되고 있다.




전체 면적이 유럽과 거의 맞먹는 ‘중국 대륙’이 어떻게 단일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대운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중국은 국토의 가운데를 흐르는 화이허(淮河)를 기준으로 남북의 자연과 인문 환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역사상 중국 대륙이 남북으로 분단됐을 때는 대부분 화이허를 기준으로 이뤄졌다. 중국 대륙을 하나로 묶은 것은 이 화이허의 남북 지역을 연결하는 대운하라는 물류 인프라였다.

역사상 대운하는 크게 두 시기로 나뉘는데 출발지는 같지만 목적지는 각기 달랐다. 베이징에 수도를 건설한 원나라를 기준으로 이전은 항저우에서 뤄양·시안을, 이후는 항저우와 베이징을 연결했다. 항저우 등 저장성은 경제 중심지고 뤄양과 베이징은 정치 중심지였다.

대운하 프로젝트를 처음 만든 사람은 수양제인 양광이다. 시대적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앞서 중국을 처음 통일하고 번성시킨 것은 진·한 시대였지만 이 시대의 경제와 정치 중심지는 일치했는데 지금의 황허 중류의 시안과 뤄양 일대였다. 중국인들이 보통 ‘중원’으로 부르는 지역이다.

위·촉·오 3국으로 분리된 ‘삼국시대’를 지나고 북방 유목민족이 대거 남하해 중원을 차지하면서 중국인들은 남쪽인 지금의 창장(양쯔장) 유역으로 이주했다. 317년 동진의 건국이다. 이른바 남북조 시대로 중원의 한족들이 대거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강남’, 즉 지금의 저장성 일대가 대규모로 개발된다. 남북조 시대 200여년을 거치면서 집중 개발된 강남의 생산력은 그동안 잇단 전쟁으로 황폐화된 중원을 앞질렀다. 이후 중원은 정치적 중심 역할을 회복했지만 식량 등 물자는 이제 강남에서 조달해야 했다.

589년 남북조 시대를 마감하고 한나라 이후 처음 중국을 재통일한 수나라에 이는 절실한 문제였다. 즉 강남의 물자를 중원에 있는 수도 뤄양으로 실어오기 위해 판 것이 대운하다. 세부적으로는 584년 시안과 뤄양을 잇는 ‘광퉁취(광통거)’에서 시작해 이어 605년 뤄양~창장의 ‘퉁지취(통제거)’를, 608년 뤄양~줘진(탁군, 현재 베이징 인근)의 ‘융지취(영제거)’를, 610년에 항저우 지역의 ‘강남운하’를 각각 신설하거나 수리했다. 결과적으로 수나라 대운하는 대각선이 뤄양을 사이에 두고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총 길이는 2,700㎞에 이르렀다.

수나라 대운하는 당나라 시대를 거쳐 송나라까지 번성한다. 그러던 가운데 송나라가 1126년 북방민족인 금나라의 침공으로 또 ‘강남’으로 후퇴하면서 대운하는 작동 정지상태에 들어갔다. 송나라가 금의 침공을 방해하기 위해 대운하를 일부러 파괴했다고 한다.

대운하가 다시 열린 것은 금·남송 남북 분립체제를 극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몽골족의 원나라였다. 다만 이제는 대운하의 위치가 바뀌었다. 원나라가 수도를 지금의 베이징(당시 이름은 다두(大都))로 정하면서 강남의 물자가 바로 베이징으로 직접 오는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다. 즉 항저우에서 시작해서 산둥성을 거쳐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남북 축으로 바뀌었다. 시안·뤄양 구간이 없어지면서 전체 길이도 1,800㎞로 축소됐다.



남북으로 이어진 대운하 공사는 원나라 때 시작해 이후 명·청나라까지 보강되면서 지금 모습이 됐다. 원래 하천이 부족한 베이징 지역에서는 대운하가 물류의 실핏줄 역할을 했다. 항저우에서 출발한 선박은 대운하를 달려 베이징 성문 밖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 대운하는 베이징과 항저우를 연결한다고 해서 ‘징항(京杭)대운하’로 불린다.

징항대운하가 없었다면 새로운 정치 중심인 베이징의 생존도 어려웠을 듯하다. 운하라는 것이 그냥 땅만 판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수량과 수질을 관리해야 하고 또 때에 맞춰 준설도 해야 한다. 전통시대 대운하 관리는 중국이라는 국가의 명운을 거는 대사업이었다.

항저우에 있는 ‘징항대운하 남단’ 표지석


대운하의 운명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바뀐다. 철도가 등장하면서 대운하의 역할을 앗아간 것이다. 중국 국가대동맥으로서 대운하의 종말은 1901년 청나라 정부가 대운하 관리기관을 폐지하면서다. 이후 단순한 하천으로 남았던 것이 현대에 들어와 일정 부분 물류기능이 부활했다. 지금도 항저우 지역에 가면 대운하를 통해 물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 운하의 저렴한 비용이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대략 항저우에서 황허까지는 대운하가 운하로서 일정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한편 대운하는 중국과 중국인에게 특수한 정체성을 만들기도 했다. 인원과 물자의 유통이 순전히 대륙 안에서 해결이 되면서 바다를 멀리하게 된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중국은 아주 일부 시기를 빼고는 해군력이 거의 없거나 아주 약했다.

중국 대륙의 인원과 물류를 연결하는 과거 대운하 역할을 지금은 고속철도가 하고 있다. 중국은 첨단 고속철도망을 통해 전국을 하나로 묶고 있다. 과잉중복 투자라는 지적도 받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끊임없이 철도망을 늘리는 이유다. 2019년 말 현재 중국 고속철도망은 총 3만5,000㎞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5,000㎞가 늘어났다.

올해도 20여개 구간의 고속철도망이 신규 운영될 것이라고 중국 당국은 밝혔다. 현재 최신 열차의 이름은 ‘푸싱(復興·부흥)호’인데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외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 구호에서 가져온 것이다.
/베이징·항저우(글·사진)=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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