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태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증시를 옥죈 올해 1월 개인투자자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역대 최대인 4조5,000억원가량의 주식을 사들였다. 반면 기관들은 5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우며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말 이후 급등장을 연출하던 국내 증시가 외부 변수에 출렁거리자 개인들은 강력한 저가 매수에 나선 반면 기관들은 차익실현을 하며 매도세가 확대됐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 개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조4,825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금액 통계를 낸 지난 2001년 9월 이후 최대 규모다. 종전 2010년 5월이 4조1,82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1월은 연초 효과 등에 힘입어 개인들의 매수세가 대체로 강한 편이다. 실제로 2002년부터 올해까지 19년간 1월에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순매도세를 보인 경우는 다섯 차례에 불과했다. 다만 올해를 제외한 최근 2년간 개인들은 연속 순매도세를 나타냈다.
특히 올해는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관계가 고조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등 큰 악재가 잇달아 발생했지만 개인은 ‘공포’를 사들이며 예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올해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돼 증시가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2003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가 발병했을 때 단기적으로 증시가 조정을 받았지만 결국 반등한 사실을 이미 경험을 통해 학습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날 코스피지수가 전날 1.71% 하락한 데 이어 또다시 1.35% 빠졌지만 개인들은 매수세를 그치지 않았다. 신동준 KB증권 연구위원은 “과거 바이러스 공포감은 2개월을 전후한 시점이 가장 높았다”며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재정확대와 통화완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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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올해는 예년과 달리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를 중심으로 하는 반도체·정보기술(IT) 업종의 실적 개선세가 유력해 살 만한 종목이 확실했다는 점에서 개인들이 매수세를 이어가기 쉬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인들은 지난 1월 삼성전자를 1조2,759억원어치 순매수했고 SK하이닉스도 3,223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전체 순매수액의 35.7%에 달한다. 개인들은 지난해 말부터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이들 종목이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주가가 하락 조정되자 대거 매집에 나섰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지난 23일 이후 개인들이 1조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이며 매수세가 집중됐다.
반면 기관은 ‘역대급’ 순매도세를 기록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지난 한 달간 5조740억여원어치를 팔아치우며 2009년 5월 5조6,732억원을 순매도한 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만 9조7,562억원을 사들이며 코스피지수 하락을 막아낸 기관들이 지난해 12월27일 배당락 기준일이 지난 후부터 차익거래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매수 물량을 고려하면 올해 3월 선물·옵션 만기일까지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최근 바이러스 리스크가 가속화되면서 차익 거래를 위한 매도세가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증시 약세가 갑작스럽게 진행되면서 기관의 현물 매도세가 강해졌다”며 “생각보다 빨리 기관의 배당매수차익거래 청산 매물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성호·심우일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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