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 문재인 정권을 향해 “저능”, “바보”, “겁먹은 개” 등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 외교의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고 날선 비판을 내놨다.
이 최고위원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신이 무뢰배의 가랑이를 긴건 袴下之辱(과하지욕) 이라고 해서 훗날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당장의 치욕을 참는 의미라도 있지만 (정부는 뭘 바라고 북한 권력핵심의 막말을 참고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정부의 대응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 최고위원은 “(우리 정부가) 일본에겐 방구석 여포(삼국지 초반 등장하는 용맹한 여포를 빗대 집안에서만 큰소리치는 사람을 일컫는 말)처럼 (큰소리치고) 중국에게는 말에 붙은 파리처럼 (달라 붙고) 미국에게는 글로벌 호구처럼(당하고) 북한에게는 노이즈캔슬링 이어폰 낀 듯 못 들은 척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한편 김 제1부부장은 지난 3일 밤 담화문을 통해 막말에 가까운 언사를 쏟아내며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했다.
이에 대해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김 제1부부장 담화와 관련해 따로 언급할 사항은 없다”며 “다만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이 상호 존중하며 함께 노력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김 제1부부장의 대남 강경 담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남북협력사업을 시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문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에서 북한과 ‘보건 분야 공동협력’을 제안한 것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북한 내부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현 상황이 남북대화를 재개할 적기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청와대는 특별한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남북교류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 제1부부장의 비난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부터 대남 메신저로 활약한 김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이 “남쪽에서 스타가 됐다”고 말할 정도로 청와대가 외교적 스킨십에 공을 들였던 북측의 핵심 인사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한국에 충격적인 경각심을 부여하기에는 김 제1부부장만 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며 “실제 김 제1부부장이 남북관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담화보다도 파급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김 제1부부장이 백두혈통인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대남 강경 메시지는 사실상 문 대통령의 남북협력 제안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의중이라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문 대통령을 만난 김 제1부부장이 담화문을 낸 것은 김 위원장이 말을 한 것이나 똑같은데, 대남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의 4월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정부·여권이 어려울 때 몰아붙이면 청와대에서 대북 파격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부정적인 의중을 보인 만큼 정부의 대북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김경훈기자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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