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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 文정부의 '제2차 항일전쟁', 어떤 명분과 실익 얻길래

9일부터 한일 양국 인적교류 사실상 '올스톱'

'수출규제-지소미아 종료' 논란 이후 2차전

'입국제한' 100개국 중 日만 찍어 반격 조치

中·이란 함께 규제한 일본에 명분 부족 지적

중국엔 180도 다른 태도에 국민 지지도 의문

1차전 땐 실익없이 문재인·아베 인기만 상승

문재인 대통령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일본이 지난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한국 정부가 즉각 맞불을 놓으면서 한일 갈등이 재점화될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수출규제-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갈등 이후 소강 상태를 맞았던 한일관계가 2차전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이번 충돌이 소모적인 ‘친일-반일’ 논란 등 자칫 양국의 정쟁 요소로 활용돼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코로나19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이미 100여 개 국가가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취한 상황에서 유독 일본에만 반격을 시도한 것에 대내·외적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과 인적교류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또 다른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9일 0시부터 일본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와 기존에 발급된 비자의 효력이 정지된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6일 오후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의 한국인 입국규제 강화에 맞서 대응조치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中엔 ‘침묵’, 日에만 즉각 ‘반격’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지난 6일 저녁 7시45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9일부터 일본에 대해 △90일 이내 무비자 입국 중단 △기존비자 효력 정지 △이착륙 공항 제한 △특별입국절차 적용 △여행경보 2단계(여행자제)로 상향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5일 제한 조치를 꺼낸 지 단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일본과 같은 날, 비슷한 수준의 규제 조치로 맞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조 차관은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방역 움직임을 보여온 일본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조치를 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감염병을 엄격하게 통제·관리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반면 일본은 취약한 방역 대응을 두고 여러 의문을 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대한 전격적인 반격을 주도한 것은 물론 청와대다. 청와대는 격앙된 분위기 속에 같은 날 오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응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며 일찌감치 관련 입장을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사실상 전면적인 입국금지 조치를 취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이례적으로 직접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도미타 대사를 싸늘하게 맞이한 강 장관은 “그간 추가 조치를 자제할 것을 수차례 촉구했는데도 충분한 협의나 사전 통보도 없이 부당한 조치를 강행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도미타 대사는 이에 대해 “앞으로 1~2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종식 여부가 달린 중요한 시기”라고 양해를 구했다.

일본의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에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에게 초치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가 6일 외교부 청사에서 강 장관에게 인사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외교부는 도미타 대사 초치에 앞서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두세 차례나 청사로 불러 본국 조치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외교부가 특정 사안을 놓고 같은 나라 대사관 관계자를 이틀 연속 불러들여 따진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외교부는 이와 함께 입장문을 내고 현 시점을 ‘한국이 코로나19 확산 방지 노력에 성과를 보이는 시점’으로 스스로 규정한 뒤 일본의 조치에 “방역 외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지금껏 전 세계 100개 이상 국가로부터 입국제한·금지 조치를 받는 동안 ‘방역 외의 다른 의도’를 언급한 대상은 일본이 처음이었다. 똑같이 방역능력을 갖춘 데다 일본과 같은 날 더 강도 높은 ‘전면 입국금지’ 카드를 꺼낸 호주에는 의례적인 항의 입장만 전달했다는 점에서 외교부의 대응 방식은 더 뚜렷하게 대비됐다.

이는 중국 정부를 대하는 태도와도 180도 다른 자세였다. 한국 정부는 올 초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됐을 때도 입국제한 카드를 전혀 만지지 않다가 2월4일에야 이미 자국에서 봉쇄된 후베이성에 한해 입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지난달 26일 김건 차관보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청사로 불렀을 때도 외교부는 “초치가 아니라 면담”이라고 극구 해명했다. 지난 5일 기준으로 중국 17개 성이 역으로 한국에 입국제한 조치를 내리고 860명을 강제 격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지금도 강경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100개가 넘는 국가로부터 입국제한·금지 처분을 받는 동안 우리 정부가 상호주의에 입각해 국가 단위로 입국제한을 건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명분도 실익도 온통 ‘물음표투성이’

정부는 일본만 콕 집어 규제를 건 이유에 대해 여러 루트로 “저의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구체적인 설명은 자제했지만 “다른 나라의 입국제한 조치는 방역 때문이고 일본은 정치적 의도 때문”이란 판단에 확신을 갖는 듯한 반응이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이번 대응을 2018년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 이후부터 이어진 갈등의 연장선으로 해석했다. 지난해 7월부터 이어진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입국 제한 조치까지 더해지다 보니 청와대의 감정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다. 최근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축사에서 직접 일본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음에도 수출규제를 취소하긴커녕 오히려 한국을 궁지로 모는 데 합세했다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각종 스캔들과 미숙한 코로나19 대응으로 최근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입국 제한 조치로 자국 국민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 정치적 반등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는 분석을 지지했다.

6일 김포국제공항 국제선청사 모니터에 표시된 일본행 항공편. 한일 양국의 갑작스러운 입국 제한 조치에 따라 일본행 항공편은 즉각 대폭 줄어들었다. /연합뉴스


다만 사실상 2차전 양상이 된 이번 한일 갈등에 우리 측 명분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일본의 경우 한국과 함께 중국, 이란 등 다른 주요 감염국들을 함께 입국 제한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한국은 오직 일본만을 제재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지적대로 일본의 소극적 방역체계가 문제였다면 중국을 비롯해 더 후진적 방역체계를 보유한 다른 100여 개 국가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은 방역 선진국인데도 ‘한국이 코로나19 확산 방지 노력에 성과를 보이는 시점에’ 제한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는 반대 명제도 마찬가지다. 같은 선진국인 싱가포르와 호주가 비슷한 시점에 더 강력한 제재를 걸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보복 조치를 전혀 검토한 적이 없었다.

만약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의 전언대로 이번 대응 조치의 이유가 ‘특수한 한일관계’ 때문이었다면 이는 더 문제가 된다. “한국 역시 방역이 아닌 정치적 대응을 한다”는 역공의 빌미가 돼 국제적 지지도 얻지 못할 수 있다. ‘사전 협의나 통보를 안 해서’ 정도의 명분은 청와대 차원의 격앙된 반응을 설명하기엔 너무 단순하다.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입국을 제한한 국가는 일본 외에도 수두룩하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결정이라 하더라도 ‘국민 불안감 해소’ 등 일본 측이 표면적으로 내건 논리는 오히려 우리보다 탄탄한 편이다. 감염국에 대한 입국제한이 반드시 과학적 방역 효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불필요한 공포를 잠재우는 것 또한 중대한 방역 목표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올림픽을 고작 넉 달 앞둔 국가가 지금 같은 비상 상황에서 한국, 중국, 이란 등 주요 감염국에 제재를 둔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란 평가다. 통상적으로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중국·한국과 같은 주요 강대국·선진국과 각을 세우고 싶어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단행된 지난해 7월13일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올린 ‘죽창가’. /자료제공=조국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정부의 대내적 명분도 지난해 1차 항일전쟁 때보다 취약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1차전 때는 그나마 국민 감정이 반영된 과거사 문제와 연관돼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얻었지만 코로나19 사태에는 항일 감정과 연관시킬 요소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초기부터 중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해야 했다”는 여론이 아직 남은 상태에서 대중(對中)-대일(對日) 외교 간 불균형이 노골적으로 부각될수록 정부 논리에 공감하지 않는 국민들이 늘어날 위험도 있다.

양국 간 감정싸움이 길어질 경우 국가적으로 얻을 실익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붙는다. 이미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가 휘청이는 상황에서 입국 제한에 더해 추가적인 수출 규제나 지소미아 종료와 같은 고강도 상호 보복이 나올 경우 그 타격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 간 감정싸움에 국민들까지 이성을 잃고 휩쓸릴 경우 코로나19 사태가 ’신천지 논란’에서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옮겨붙어 총선과 맞물린 정치·외교적 이슈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지난해 한일 갈등 1차전 때 확실하게 실익을 얻는 이는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아니라 ‘외부의 적’ 설정으로 정치적 내부 위기를 잠재우고 지지율이 동반 상승한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아베 내각 밖에 없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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