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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962년 한국 최초 원자로 점화

서울대 연구소서 연료봉 장착

서울대 공과대 연구소에 설치된 것과 같은 형태의 트리가 마크2.




1962년 3월19일 오전10시55분,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현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서울대 공과대학 원자력연구소. 연구용 원자로에 연료봉이 처음 장착됐다. 미국 제네럴아토믹스사가 제작한 트리가마크2는 출력 100㎾급 소형 연구용 원자로. 첫 불을 댕긴지 6시간 만인 오후4시45분, 핵연료봉 56개에 모두 불이 들며 핵분열 반응이 임계치에 이르렀다. 임계란 핵분열 반응이 일정한 비율로 계속되는 상태. 원자로가 안정적 가동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한국이 원자력 세상에 첫발을 딛은 순간이다.

경제개발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1959년 7월 연구용 원자로를 들여온 배경은 두 가지. 인력부터 키우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마침 시대도 좋았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던 미국은 트리가 시리즈 연구로 66기를 제작해 내국용으로 33기를 쓰고 33기는 24개국에 우호적인 가격으로 넘겼다. 우리나라는 절반은 예산으로, 나머지는 차관(38만2,000만달러)으로 들여왔다. 아시아의 도입국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대만·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방글라데시·베트남 등 9개국.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도 이 원자로를 샀다.



한국 최초의 원자로는 1995년 가동을 멈출 때까지 다방면으로 쓰였다. 원자력공학 전공 대학생 1,719명과 원전 운영을 맡을 산업종사자 1,339명이 실습 경험을 쌓았다. 의료와 생명공학·중성자 등의 연구에도 발을 걸칠 수 있었다. 1969년 출력을 250㎾로 높인 이 원자로는 1972년 인근에 설치된 트리가마크3 원자로와 함께 원자력공학의 여명을 밝혔다. 폐로 과정에서도 관련 데이터가 쌓였다. 우리가 짧은 기간에 한국형 원자로를 설계, 제작하고 수출하게 된 힘이 바로 이 연구로에서 나왔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국의 연구로는 달랑 2기. 한 대학의 연구로는 백열전구를 밝히는 수준이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30㎿급 ‘하나로’ 연구로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가동 중이지만 크게 부족하다. 부산 기장군에 건설 중인 15㎿급 연구로가 오는 2024년 완공돼도 부족 현상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로는 범죄 수사와 미상 물질 및 역사 유물 판정에서 분자와 양자물리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용도가 광범위하다. 신소재 개발도 앞당길 수 있다. 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네덜란드의 연구로를 개선하고 요르단에 설비 일체를 수출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으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원전 축소 여부를 떠나 연구로만큼은 기초과학 필수설비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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