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수리기사들이 근로계약을 맺으며 출퇴근·업무수행 시간 등 노동시간을 특정하지 않았다 해도 회사는 주휴수당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법 민사합의12부(김용두 부장판사)는 A씨를 비롯한 퇴직 정수기 수리기사 8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지급 청구소송에서 총 1억7,800만여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A씨 등 수리기사 8명은 회사와 용역계약을 맺고 각각 5~13년간 정수기 설치 및 점검 업무를 맡아왔다. 이들은 최근 소송을 통해 근로자성을 인정받고 퇴직금을 받은 후 그동안 쌓인 주휴수당·연차수당·휴일수당 등도 달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 등이 대체로 오전8시30분 이전에 출근해 오후4시 이후 퇴근했을 것으로 판단, 하루 8시간씩 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객이 방문을 요구하는 시간에 맞추려면 출근시간이 일정해야 하고 회사가 요구한 하루 평균 업무량을 맞추려면 퇴근시간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주휴수당과 연차수당·휴일근로수당 등을 산정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에서 사측은 근로계약서에 출퇴근 및 업무수행 시간을 명시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우며 이에 따라 통상임금을 계산해 수당을 지급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폈다. 포괄임금계약을 맺어 매달 실적에 따라 법정수당을 포함해 돈을 지급했다는 주장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회사 주장대로 포괄임금계약을 맺었다고 하면 근로자들이 수당을 전적으로 포기하게 돼 불이익하다”며 “그렇다고 이를 상쇄할 이익이 부여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소송을 대리한 이충윤 법무법인 해율 변호사는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이들도 근로자성만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을 모두 수령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판결”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회사가 근로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깨닫고 법을 준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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