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비은행 금융회사에 대한 직접대출을 검토하면서 단기자금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증권사들이 대출 담보의 범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은은 이달 초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를 통해 자금지원에 나섰지만 증권사들이 RP 담보로 쓸 수 있는 우량채권은 이미 다른 대출의 담보로 대부분 소진해 큰 수혜를 못 보고 있는 형편이다. 증권사들 수중에 남은 가용 담보는 일부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 채권 등이지만 이에 대한 한은의 담보 인정 가능성은 낮아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오는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비은행 금융기관 대상 대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이주열 한은 총재는 간부회의에서 “한은법 제80조를 근거로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검토를 공식화한 만큼 실제 대출 실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금융권에서는 보고 있다.
주요 대출 대상은 단기 유동성이 빠듯한 증권사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증권 업계에서는 ‘대출 담보의 범위’가 관건이라는 반응 나온다. 이미 한은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번의 RP 거래를 통해 한국증권금융(증금)과 증권사들에 자금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가용 우량 담보는 상당 부분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증권사 자금담당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그동안 증금 및 한은과 RP 거래를 통해 담보로 쓸만한 채권은 이미 바닥났다”며 “증권사의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출 담보 채권의 범위 확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우선 신용등급 AA이상 우량 회사채가 담보에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대부분 장외파생상품 거래 담보 등에 회사채도 대부분 소진됐기 때문에 회사채를 담보로 받아준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증권사 단기 자금난의 원인인 부동산 PF 자산유동화증권(ABCP)과 전자단기사채 등을 어떤 방식으로든 담보로 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한은이 부실 위험이 있는 유동화 증권을 담보로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증권 업계 내에서도 PF ABCP에 대한 지원 관련 시각이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고수익 사업이지만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부동산 PF를 줄여왔던 증권사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확장하며 돈을 벌어 온 증권사들 간 무차별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은이 증권사 보증 PF ABCP나 증권사 CP를 직접 담보로 받고 증권사에 대출해주기보다는 증금을 통한 간접지원 방식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한은이 한은법 80조를 동원, 직접대출을 해준 사례는 외환위기 당시 한 차례 있었다. 1998년 1월부터 6개월간 증금에 2조원, 신용관리기금에 1조원 등 총 3조원을 지원했다. 증권사들에는 증금을 통해, 종금사는 신용관리기금을 통해 간접 대출을 해줬다.
증금은 이미 한은 RP를 통해 확보한 자금과 자체 자금을 합쳐 증권사에 총 3조5,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한 상태다. 증금은 한은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여신전문회사채·카드회사채·일반회사채 등도 증권사들로부터 담보로 받고 RP 거래나 대출을 해주고 있다. 증금 역시 한은과 거래에서 담보로 쓸 수 있는 우량 채권들 대부분 소진한 상태다. 이에 따라 한은이 담보 범위를 넓혀 증금에 자금지원을 해주고 증금이 한은은 받기 힘든 유동화 CP 등을 받아 주는 방안이 거론된다. 현재 증금은 우량 일반기업 CP까지만 담보로 받고 있다. 대형증권사의 한 자금담당자는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들의 자금난이 최악은 지났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증금지원이나 한은RP, 채권안정펀드 사각지대에 있는 증권사 보유 채권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혜진·손철·김민경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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