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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보다 강한 '편 가르기' 본능, 정치판 삼킨다

[책꽂이-정치적 부족주의]

■에이미 추아 지음, 부키 펴냄

베트남·이라크서 이념만 본 美

고유 집단본능 경시...개입 실패

백인 엘리트-백인 노동자 대립 등

집단간 갈등은 美 내부서도 심화

면對면 대화로 보편가치 찾아야

지난 2016년 6월 클리브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권 경선에 나섰던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최종 대선 후보가 된 후 러닝 파트너인 마이크 펜스와 함께 지지자들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AP연합뉴스




세계 최강대국 시민이라 자부하는 미국인들이 떠올리기조차 싫어하는 세 개의 전쟁이 있다. 베트남·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막대한 자금과 외교·군사력을 쏟아붓고, 핍박받는 현지 주민들에게 미국의 최고 가치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사하겠다는 의지도 충분히 내보였지만 세 곳에서 모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까닭이다. 미국 외교사에 대표적 참사로 기록된 이들 전쟁에서 미국이 실패한 진짜 이유는 뭘까.

국제·민족 분쟁 전문가인 에이미 추아 예일대 교수가 신간 ‘정치적 부족주의’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국가나 이념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각 지역의 정치적 집단 본능을 미국이 간과한 탓이라는 것이다.



■이념 렌즈로는 볼 수 없는 집단 본능

미국은 베트남인들이 부유한 화교에 대해 갖는 반감과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알지 못한 채 전쟁에 뛰어들었고,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념 논리에만 집착하다 베트남전에서 참패했다. 이라크에서는 강경 수니파와 온건 수니파, 시아파 간 갈등의 복잡성과 심각성을 몰랐다. 그 결과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국가 수립이라는 허망한 꿈을 꾸다 이슬람국가(ISIS) 탄생의 빌미만 제공했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이보다 더 복잡했다. 하지만 미국은 여기서도 민족, 부족 간 정체성을 계속 과소평가하고 옛소련의 침공과 철수와 같은 냉전 요소만 따지다가 스스로 테러 세력에게 무기와 자금을 대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저자가 책을 통해 미국의 과거 뼈아픈 외교 실책을 다시 분석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과거 국경 바깥에서 미국을 위기로 몰아갔던 정치적 부족주의가 이제 미국 내부에서도 똬리를 틀며 국가 정체성과 존립 근간까지 흔들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로스쿨 교수./사진출처=에이미 추아 페이스북




■美 내부서 심화하는 정치적 부족주의

저자에 따르면 정치적 부족주의는 일부 분쟁 지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말 그대로 인간의 본능이다. 집단을 이루는 구심점도 다양하다. 주로 혈통이나 민족, 인종, 종교 등에 기반하지만 젠더, 소득, 출신지역도 집단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무엇을 구심점으로 삼든, 위기 앞에서 각 집단은 더 똘똘 뭉치고, 집단 바깥의 존재는 더 강력하게 배제한다. 내 편, 네 편을 분명하게 가름으로써 유대감과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백인,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등 인종을 기준으로 한 정치적 부족주의가 이미 작동하던 상황에서 최근 경제적 불평등 심화로 또 다른 집단 분화가 이뤄졌다. 미국 사회의 주류였던 백인이 소득과 학력, 직업, 거주지역 등을 기준으로 두 계급으로 나뉜 것이다. 엘리트 백인 계급은 정치적 올바름 등을 내세우며 집단 정체성을 강화했고, 노동자 백인 계급은 이에 대한 반감을 구심점으로 삼아 단단히 뭉쳤다. 특히 노동자 백인 계급은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에 용기백배해 더 강하게 결속했다. 그 결과 탄생한 도널드 트럼프 정권은 미국의 정치를 좌우 이념이 아닌 정치적 부족주의의 소용돌이로 내몰고 있다. 우파는 백인 정체성 정치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고, 좌파는 이에 대한 반발로 정체성 차별화에 집착하며 더 많은 부족주의를 양산하고 있다.



■한국서도 점증하는 집단 갈등

저자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좌우 구분 없이 심화할수록 미국 사회 전체가 ‘부족적 적대’에 시달리게 된다고 우려한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겸손을 전제로 한 ‘면대면 대화’를 제안한다. 그래야만 서로에 대한 편견을 깨고 보편적 가치를 지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최근 총선을 치른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도 이념을 넘어 세대, 종교, 소득, 지역, 성별 등에 기반한 정치적 갈등이 점점 다양해지고,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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