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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의 음악으로 듣는 여행]쪽빛 바다에 찬란한 태양…'산타 루치아'가 절로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소렌토

세계 3대 미항으로 손꼽히는 나폴리

밝고 낙천적인 '민요' 탄생지로 유명

가곡제 통해 수많은 노래 세상에 나와

伊 유명가수 루치오 달라 80년대 초에

카루소 말년 보낸 소렌토 호텔방 찾아

거장 생각하며 즉석서 '카루소' 작곡도

이탈리아 나폴리 만의 프로치다 섬 전경.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이탈리아의 나폴리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이 도시는 <산타 루치아> <오! 나의 태양> <돌아오라 소렌토로> <마리아 마리> <날 잊지 말아요> <푸니쿨리 푸니쿨라>와 같은 나폴리 민요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나폴리 민요는 매우 낙천적이다. 듣고 있으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일시에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노래 자체가 일종의 인생예찬과 같다고나 할까. 어떻게 이렇게 어두운 그늘이 하나도 없는 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지방 사람에게는 세상 풍파라는 것이 없는 것일까? 나폴리 민요를 들으며 이 지방 사람들의 대책 없는(?) 낙천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나폴리와 근방의 소렌토를 여행하다 보면 금방 풀린다. 지중해의 물빛이 그야말로 환상적이고, 그 위에 떠 있는 태양이 그토록 찬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낙천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나폴리와 소렌토에 가면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 나의 태양>을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오! 밝은 태양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올 때

하늘에 밝은 빛이 비치운다.

나의 맘에 사랑스런

나의 태양 비치인다.

오! 나의 오!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이탈리아 카프리섬에서 본 전경.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사랑하는 연인을 태양에 빗대어 노래한 이 노래는 나폴리 사람들의 태양예찬인 동시에 인생예찬이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 위로 반짝이는 찬란한 태양. 그 태양이 비치는 한 나는 영원히 인생을 찬양하고 사랑을 노래할 것이라는 나폴리 사람들의 낙천적인 기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폴리 민요는 원어로 ‘칸초네 나폴레타나’라고 하는데, 그 기원은 18세기 초 나폴리 왕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나폴리 왕국은 교회의 음악제전을 물려받아 대중적인 노래제전을 열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널리 인기를 끌었던 피에디그로타 음악제도 이런 전통을 물려받은 것인데, 이 음악제를 통해 수많은 나폴리 민요들이 탄생했다. <오! 나의 태양> <돌아오라 소렌토로> <산타 루치아> 같은 대표적인 나폴리 민요가 모두 이 가곡제를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나폴리에는 나폴리 항구 못지않게 유명한 관광명소가 있다. 베수비오 화산과 폼페이 유적이다. 이 중 베수비오 화산은 근 100년간 유럽 대륙에서 유일하게 화산 활동이 있었던 산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가는 명소가 되었지만 한때 이 산은 엄청난 공포와 재앙의 근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인 서기 79년 8월 24일, 화산이 거대한 불덩어리를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오전 11시경에 시작된 화산 폭발은 그 다음 날인 25일까지 18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 수백억 톤에 달하는 뜨거운 화산재가 폼페이를 비롯한 인근 도시를 뒤덮었다. 그로 인해 한때 번성하던 도시 폼페이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화산재 속에 묻혀 있던 폼페이는 약 1,500년이 지난 뒤 그 모습을 드러냈다. 1549년 수로 건설을 목적으로 땅을 파다가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도시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진 것은 그로부터 200년이 더 지난 18세기에 이르러서다.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베수비오 화산에도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화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려는 야심찬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영국의 사업가인 토머스 쿡이었다. 그는 당시 유럽의 귀족이나 부자들에게 살아있는 화산을 보여주겠다며 1880년에 베수비오 화산의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설치했다. 하지만 막상 개통을 하고 나니 아무도 이것을 타려는 사람이 없었다. 화산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불안해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타계하기 위해 토마스 쿡은 아이디어를 하나 냈다. 노래를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 바로 나폴리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이다. 푸니쿨리 푸니쿨라는 이탈리아어로 ‘케이블카’라는 뜻의 푸니콜라레(Funicolare)에 나폴리 사투리와 줄임말을 결합해서 만든 단어다.

새빨간 불을 뿜는 저기 저 산, 올라가자.

그곳은 지옥같이 무서운 곳. 무서워라.

산으로 올라가는 전차타고, 누구든지 올라가네.

흐르는 저 연기는 오라고 손짓을 하네.

올라오라. 올라오라. 저기 저 산에 가자.

푸니쿨리 푸니쿨라 푸니쿨리 푸니쿨라

누구나 타는 푸니쿨리 푸니쿨라.

가자 저기 저산에 푸니쿨리 푸니쿨라

노래 덕분에 큰 인기를 끌었던 케이블카는 안전상의 이유로 1943년에 철거되었다. <푸니쿨리 푸니쿨라>의 선율처럼 사람들이 신나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던 베수비오 화산. 지금 케이블카는 없어졌지만 베수비오 화산의 위용은 여전하다. 둘레가 약 500m, 깊이가 250m쯤 되는 거대한 분화구에서는 아직도 여기저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노래했던 바로 그 연기다. 노래 가사는 베수비오 화산을 ‘지옥같이 무서운 곳’이라 묘사했으나 선율은 경쾌하기 그지없다. 그 무서움마저 삶의 즐거움으로 전환시키는 나폴리 사람들의 낙천성이 묻어나는 노래다.

이제 나폴리에서 열차를 타고 지중해 연안을 따라 가 보자.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소렌토가 나타난다. 소렌토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로 나폴리 만을 사이에 두고 나폴리와 마주 보고 있다.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이곳에 엑첼시오르 비토리아(Excelsior Vittoria)라는 호텔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1873-1921)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카루소가 묵었던 방에는 넓은 테라스가 있고 그 테라스에 서면 가까이 나폴리 만의 푸른 바다와 그 너머 나폴리가 보인다. 호텔은 지금도 카루소가 사용했던 피아노와 집기들을 그대로 둔 채 계속해서 손님을 받고 있다.

카루소는 나폴리에서 태어나 유럽과 미국을 무대로 활약했다. 1895년부터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0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처음 출연한 이래 1920년까지 거의 매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시즌 개막작 주연을 맡았다.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축음기와 녹음 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축음기 보급과 함께 그의 음반이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일반인 가정에 보급되면서 카루소는 20세기 초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통틀어 수퍼스타가 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테너의 대명사가 되었다.

엑첼시오르 비토리아 호텔. /사진=엑첼시오르 비토리아 호텔 홈페이지


카루소는 1921년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는 마흔 여덟, 운명을 달리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그 해, 중병을 앓고 있던 카루소는 뉴욕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왔다. 생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고향에 도착한 카루소는 나폴리 만의 남쪽에 위치한 또 다른 항구도시 소렌토로 건너갔다. 그리고 유서 깊은 엑첼시오르 비토리아 호텔에서 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보냈다.

80년대 초의 어느 날, 이탈리아의 싱어송라이터 루치오 달라가 소렌토에 있는 이 호텔을 방문해 카루소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루치오는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나폴리 만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 호텔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카루소를 생각했다. 그리고 호텔 방에 있던 피아노에 앉아 거의 즉석에서 <카루소>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달빛이 빛나고 있는 바다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오고 있는 이 곳,

소렌토 만을 앞에 둔 테라스에서



슬픔에 젖어 울고 난 한 남자가

한 소녀를 껴안는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시작한다.

너를 정말 사랑해 정말 너무너무 사랑해.

알아? 이제 이 사랑은 혈관 속의 피를 녹여 내는

사슬과 같이 되어 버렸어. 알고 있니?

바다 한 가운데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며

미국에서의 화려했던 밤들을 생각했다네.

하지만 반짝이는 그것들은

지나가는 배에서 비춰진 불빛과 하얀 포말들이었지.

음악 속에서 아픔이 느껴지자 그는 피아노에서 일어났어.

구름 속에서 나타난 달을 보니

죽음도 그에게는 달콤하게 생각되었지.

그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았어.

바다처럼 푸른 그녀의 두 눈동자를 말이야.

그 눈동자에서 갑자가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오자

그는 숨이 막혀옴을 느꼈어.

인생의 모든 극적인 일들을 허구로 만들어 버리는 오페라 가사.

약간 분장하고 표정만 약간 바꾸어도 딴 사람이 될 수 있지.

하지만 그토록 가까이에서 진실하게 너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는

거짓으로 가득 찬 그 노래들을 잊게 하고

네 생각들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지.

그래서 모든 것들이 그렇게 작아지고

미국에서의 밤들도 마찬가지로 작아져 버리지.

고개를 돌려보면 너의 인생도

배가 지나간 뒤에 생겼다 없어지는 하얀 포말 같아 보일거야.

아! 그래. 이게 바로 끝을 향해 나아가는 인생이지.

하지만 그는 이제 인생이 끝나가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을 느껴.

그리고는 그의 노래를 다시 시작했어.

너를 정말 사랑해. 정말 너무너무 사랑해.

알아? 이제 이 사랑은 혈관 속의 피를 녹여 내는

사슬과 같이 되어 버렸어. 알고 있니?

루치오 달라가 작곡한 이 곡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버전으로 불렀다. 우리에게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가 가장 친숙하다. 노래의 주인공인 카루소도 가고, 노래를 부른 파바로티도 갔지만 그들의 노래는 남았다. 낙천적인 나폴리 민요의 본향 나폴리와 소렌토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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