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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한 방'을 향한 욕망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낯선 공간에서 개봉되지 않은 상자를 보면 호기심과 더불어 불안감이 들게 마련이다. 우리 DNA는 익숙한 것에 끌리도록 설계돼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예측 가능하고 안전이 보장된 상황을 선호한다. 투자의 경우에도 같은 기대수익률이라면 원금이 보장되고 이자율이 확정된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게 상식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개봉되지 않은 상자를 아무리 노려본다 한들 상자 안 내용물을 투시할 방법은 없다. 투자에서 이런 제어 불가능한 변수는 ‘리스크’로 간주된다. 금융공학이 리스크 관리와 분산투자를 중심으로 발달한 이유도 인간의 위험회피 본능 때문일지 모른다. 불확실한 장래변수를 확률로나마 확인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금융시장의 발전을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 몇 달간 주가는 불안한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 3월19일 코스피지수가 1,400대까지 밀리면서 위축된 실물경기가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하지만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올 들어 외국인은 21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치의 주식을 매도했다. 이 매도 물량을 받은 건 개인이었다. 일명 ‘동학개미’라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은 요동치는 장세에서 주가를 방어한 일등공신이다.



대한민국 주식시장의 저력을 믿어준 투자자의 신뢰는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다만 주식과 금융에 대한 이해 없이 과열된 투자심리가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막연히 ‘싸다’는 느낌만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건 낯선 상자를 선물 보따리처럼 풀어헤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 특히 무리하게 빚까지 내서 투자하는 것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기에 대책 없는 낙관론은 근거 없는 비관론보다 위험할 수 있다.

투자는 불확실성을 수반하기에 그 자체로 인간의 본성과 상충한다. 그렇기에 모든 투자에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인 투자 대가들은 하나같이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투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포에 쫓긴 투매만큼이나 탐욕에 휩쓸린 ‘묻지 마 투자’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한 감정에 휘둘린 결정은 대개 틀리거나 늦으며 그 판단이 바로잡힐 가능성도 희박하다.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많은 개인투자자가 이번 주가 급락을 기회로 인식한 듯하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나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나. 행여 ‘한 방’을 노린 욕망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본능마저 압도해버린 것은 아닌가. 개봉되지 않은 상자를 보면 호기심을 갖는 만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그곳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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